오랫만에 만난 유쾌한 영화다. 욕하고 죽이고 때리고 벗기는 영화가 대부분인 요즘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로맨틱 코미디다.  

연애를 제대로 하도록 도와주는 에이전시라. 사실 결혼정보업체가 처음 나올때도 낯설었다. 결혼이란 하늘이 내려준 인연을 따라 맺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결혼정보업체 등장에 많은 사람들은 인연까지 돈이 맺어주냐며 혀를 쯧쯧차곤했다. 
만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엮어주는 서비스가 없을 이유가 있을쏘냐. ‘분업화’ ‘전문화’가 더 진전되다보면 ‘연애정보업’이 아닌 ‘연애대행업’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200만명이 넘게 봤다는 <시라노 연애조작단> 얘기다. 



 
 

‘시라노 에이전시’는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연애 대행 업체다. 기존의 연애상담업체가 한발 떨어져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 대해 자문을 해주는 역할이라면 시라노 에이전시는 사랑을 쟁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사랑에 개입한다는 것이 다르다. 
우선 의뢰인(클라이언트)이 좋아하는 대상을 철저히 분석한다. 의뢰인과 대상간 상황에 맞게 구체적인 각본을 짠 뒤 시나리오에 따라 행동하도록 한다. 각본은 연애의 기본 심리를 반영한다. 상대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질투나게하고, 감동시키고, 그리하여 마침내 의뢰인을 사랑하게 만든다.

시라노 에이전시는 4명은 본색이 연극인들. 의뢰인은 이들이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말을 해야하고 행동해야 한다. 대상이 눈치채면 안되는 만큼 작전은 비밀스럽게 이뤄진다. 수백만원짜리 무선마이크는 그래서 필요하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 안 한다’는 사훈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도 도청과 미행, 사찰을 열심히 하고 있을 것 같은 모 단체와 겨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영화에는 2명의 의뢰인이 나온다. 첫번째가 현곤(송새벽), 두번째가 상용(최다니엘)이다. 
그중 두번째 의뢰인에 포커스가 맞춰있다. 상용은 교회에서 만난 희중(이민정)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시라노 에이전시를 찾는다. 에이전시 대표인 병훈(엄태웅)은 희중의 사진을 보며 흠칫한다. 이를 눈치챈 시라노 에이전시의 요원(박신혜)은 병훈과 희중의 관계를 눈치채는데....  

요즘 영화에서 으레 그러하듯 돈좀 잘버는 직업은 대게 금융인으로 설정된다. 상용도 펀드매니저다. 병훈이 높은 수임료를 부르자 상용은  “지난달에 펀드로 돈 좀 벌었다”며 거금을 선뜻 내놓는다. 

경제학으로 똘똘 뭉친 상용이 시라노 에이전시를 찾은 이유가 있다. 연애에는 쑥맥이라는 게 기본 이유다. 사랑을 쟁취할 수 있으면 기회비용인 거금은 아깝지 않다. 

'비용편익분석'에 따르면 사랑이라는 '편익'이 주는 효용이 '비용'인 거금을 능가하기 떄문이다.  





설사 연애에 쑥맥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용이 시라노에이전시를 찾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연애를 시라노에 맞긴 것은) 아웃소싱한 거죠. 제가 잘 못하는 거니까. 돈쓰는 것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제가 시간당 버는 돈이 얼마인데.”  

상용이 햄버거를 먹으며 말하는 시라노에이전시를 찾은 이유다. 아담 스미스의 ‘절대우위론’ 또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상용이 자신의 말처럼 정말로 연애를 못한다면 ‘절대우위론‘에 가깝다. 자신이 잘하는 펀드운용은 자신이 하고, 잘 못하는 연애는 연애기획단에 맞기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절대우위론에 따르면 각자 생산품 중 절대적인 우위를 가진 상품을 특화에서 서로 교역을 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아담 스미스의 절대우위론은 중상주의자들의 무역론을 반박하는데서 나왔다. 
중상주의자들은 나라의 국부란 무역에서 흑자를 많이 남기는 것이어서 각 나라는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 명이 이득을 보면 한 명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라는데 이것으로는 무역이 촉진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아담스미스는 잘하는 부분을 특화해 생산을 늘리면 전체 생산의 총량이 늘어나 모든 나라들이 부강해진다는 논리를 폈다.  

“연애를 잘못한다”는 상용의 말이 단순히 겸손한 언어라면 어떻게 될까. 

실은 상용 혼자로도 충분히 연애를 잘하는 스타일이었다면 그래도 시라노 에이전시를 찾았을까. 비교우위론에서라면 “그렇다”다. 
리카도는 비교우위론을 통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모든 재화에 대해 절대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효율성 높은 산업을 전문화하면 두 나라가 모두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얘기한다.  

연애의 경제학

상용이 펀드 운용을 통해 시간당 100만원을 번다고 가정하자. 시라노 에이전시는 연애기획으로 1시간에 50만원을 번다. 시간은 2시간이 주어져 있다. 만약 상용이 1시간은 펀드운용을, 1시간은 연애준비로 시간을 보낸다고 하자. 상용이 1시간 일해서 버는 돈은 100만원이다. 
나머지 한시간은 연애준비로 시간을 보냈으니 더 이상의 수익은 없다. 대신 별도의 지출도 없다. 상용의 이날 수익은 100만원이다. 물론 연애는 생각대로 잘됐다는 가정하에서다. 시라노 에이전시는 일을 맡지 못했으니 수익이 없다.  

그런데 상용이 연애기획을 시라노 에이전시에 맡겼다. 상용은 2시간동안 펀드운용을 했더니 수익이 200만원으로 늘었다. 그 사이 시라노 에이전시는 1시간 동안 상용의 연예계획서를 짜줬다. 상용은 50만원의 지출이 생겼지만 총 수익은 150만원이다. 시라노 에이전시는 50만원의 수익이 생겼다. 물론 이때도 상용은 연애를 훌륭히 잘했다.  

연예를 잘했다는 똑같은 결과하에서, 전자의 상용은 100만원, 시라노 에이전시는 0원을 벌었다. 후자의 경우 상용은 150만원, 시라노는 50만원을 벌었다. 전자는 모두 합쳐 100만원이, 후자는 200만원의 가치가 창출됐다. 누구에게나 모든 일에는 더 잘하는 일과 덜 잘하는 일이 있는 만큼 비교우위는 언제든지 적용될 수 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신자유주의의 근간이 됐다. 세계화나 자유무역협정(FTA)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비교우위론에 근거해 자신이 더 잘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면 모두가 이롭다는 논리였다. 
관세부과나 쿼터제, 보조금 도입은 순식간에 악이 됐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이 문을 열어젖힐 것을 요구했다. 과거 자신들이 중상주의를 바탕으로 관세와 쿼터를 도입하던 것과는 상반된 행동이었다. 

선진국들이 주장한 데로 문을 열어젖힌 선진국과 문을 연 개도국 모두 행복해졌을까.   





비교우위론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서로간 물건을 맞바꾸는 이론은 될 수 있을 지라도 보다 복잡한 국가간의 관계는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동차를, 한국이 사과에 절대우위, 혹은 비교우위가 있다고 해서 주구장창 두 제품만 만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영원히 자동차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관계에서 보자면 선진국은 계속해서 첨단제품을, 개도국은 저가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첨단제품의 부가가치가 높은 만큼 선진국 노동자는 갈 수록 부유해지고, 개도국 노동자는 가난해 질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선진국의 개도국 지배의 정치논리로 변질될 수 있다는 거다.  

이와 함께 비교우위론은 ‘완전고용’이라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갖고 있다. 

어떠한 노동자도 무역의 확대로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상대국의 제품이 밀려오면 다량의 실업자가 양산이 된다. 
미국이 자동차는 강하고 한국은 섬유가 강하다고 하자. 한국이 미국에 섬유를 다량 수출해 미국 섬유노동자들이 일을 잃게 되면 이들이 자동차 분야에 채용될 수 있을까? 반대로 미국 자동차가 밀려들어온다고 자동차 산업을 포기하게 되면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바지를 만들러 갈까?  

경제학적으로도 개도국이 인적자본의 혁신을 통한 가치 창출이 중요한 화두가 되는 요즘 세상에는 맞지 않는다. 한미 FTA 도 이같은 비교우위론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약자의 관점에서 비교우위론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다.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뒤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행위라는 뜻이다. 
독일 경제학지인 리스크가 19세기부터 써오던 개념이다. 선진국들은 보호 관세와 정부 보조금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켜 놓고, 개도국들에 대해서는 자유무역을 채택하고 보호관세와 보조금을 철폐하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당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보다 산업발달이 늦은 상태였다.  




시라노 에이전시는 사랑이 쉽게 이뤄도록 도와주는 "속성반"이다. 하지만 사랑이 운전면허 마냥 그리 만만한가. 사랑은 휘발성 강한 향기와 같아서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기쁘고 행복하고 때론 눈물을 짜내는 감정의 퇴적이 없이는 휙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때로 감정의 퇴적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위기에서 사랑을 붙잡는 볼모가 되기도 한다. 연애의 추억을 매몰비용으로 치부해 버린뒤 이겨내야할 고통이 너무 크고 깊기 때문이다. 첫번째 등장인물인 현곤은 시라노의 도움으로 사랑을 이루지만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사랑을 끝낸다. 너무 쉽게 쟁취한 사랑의 매몰비용은 생각보다 적다.

 
사랑이 속성의 방법으로 쟁취할 수 없다는 없다는 점에서 기획사를 찾을 수 없는 이땅의 많은 ‘루저’들도 용기를 가져볼 만 하다. 다만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갈 수록 경제적인 요소(집을 가졌느냐, 돈은 많은냐, 직장은 번듯하냐)에 종속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보면 사랑이 돈의 영향에서 완전 자유로울 것이라 선언하기는 어렵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은 프랑스 극작가인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인 <시라노 드 베이쥬락>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하는 다른 남자를 위해 대신 연애편지를 써줘야 하는 비운의 남자 얘기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사랑을 맺어 준다면 그 반대편에는 안네 헤르쯔의 <이별대행 에이전시>가 서 있다. 독일 칙릿(chic-lit)소설인 <이별대행 에이전시>는 직접 이별통보를 하지 못하는 연인들을 위해 마음아픈 이별을 대신해 준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보는 내내 <이별대행 에이전시>가 떠올랐다. 상용과 희중이 이별대행 에이전시를 찾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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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 2010.11.03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이 글 정말 재밌게 읽었소.
    영화는 아직 못 봤는데...
    대학 때 <시라노> 영화 봤던 거 생각나네...

  2. 딸기 2010.11.03 1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글구, 다음뷰 설정해놓지 그래? 다음 가입해 있으면...

  3. 서툰경제 2010.11.03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뷰가 먼가여. -.,-;;;

    • 딸기 2010.11.03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혹시 다음 가입돼 있지 않아?
      다음 '블로그' 들어가서 'View' 들어가서 시키는대로 하면 돼.
      그리고 블로그 플러그인에서 '다음 view 사용' 체크하고
      글 쓸 때마다 '공개-발행' 카테고리(영화) 설정하면 되고.
      가입만 해놓으면 간단함.

  4. 서툰경제 2010.11.04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조만간 가입해보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