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사랑이 있을까. 그 사랑이 50년만에 나를 찾아온다면 어떨까. 

50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50년은 20대 청춘을 주름이 자글자글한 70의 노인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한다. 첫사랑은 50년이 아니라 100년이되도 쉽게 잊혀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오히려 포도알갱이가 와인이 되는 것처럼 발효되고 숙성되어 비교할 수 없는 빈티지로 남을 수도 있다. 특히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다면. 




<레터스 투 줄리엣>은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위한, 아만다 사이프리드에 의한,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영화다. 자연스럽게 영화 <맘마미아>가 떠오른다. <레터스 투 줄리엣>은 <맘마미아>를 딱닮았다. 
<맘마미아>에서는 엄마의 옛사랑들이 엄마의 생일을 맞아 찾아온다. <레터스투 줄리엣>은 영국의 한 할머니가 이탈리아 첫사랑을 찾아온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두 영화에서 사랑의 메신저가 된다. <맘마미아>에서는 엄마 몰래 3명의 옛사랑에서 편지를 띄우는 말괄량이 딸로,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는 50년전에 쓴 편지에 우연히 답장을 해주는 작가지망생이 된다. 

시나리오 작가는 처음부터 그녀의 역할을 의도한 듯하다. 그렇다. <맘마미아>와 <레터스 투 줄리엣>의 공통분모는 ‘첫사랑’이다.  

<뉴요커>지의 자료조사요원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이다. 소피는 약혼자 빅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함께 결혼을 앞두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빅토는 자신의 식당에 들여올 버섯과 와인에 더 눈길이 간다. 
혼자 베로나를 둘러보게 된 소피는 줄리엣의 집에서 우연히 50년전에 씌여진 편지를 발견하고 답장을 써준다. 그 편지에는 부모님의 반대로 첫사랑 로렌조(프랑코 네로)를 떠나야 했던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사연이 담겨있다. 며칠 뒤 클레어가 손자 찰리(크리스토퍼 이건)이 이탈리아로 찾아온다. 소피는 이들과 함께 로렌조를 찾는 여정에 동참한다.  

첫사랑은 왜 애절할까. 

두번째, 세번째 사랑에 비해 첫사랑은 확실히 심장 한켠에 남는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란 한계효용이 지날 수록 줄어든다는 말이다. 

한계효용이라는 단어가 좀 어렵다. 한번더 풀어보자. 경제학에서 ‘효용’이란 마음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 혹은 행복감을 말한다. 효용이 높다고 하면 만족감이 높다는 말이다. ‘한계’란 추가적인(additional) 또는 주변의 여분(marginal)을 뜻한다. 결국 한계효용이란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만족감이다.  






똑같은 일인데도 반복해서 하다보면 처음보다 만족감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정말 맛있는 사과였지만 다시하나더 깨물면 아무래도 맛이 떨어진다. 첫 사과때 효용이 10이었다면 두번째 사과는 5가 된다. 
힘들게 등산을 마친 뒤 목에 들이키는 맥주 첫잔 맛과 두번째 잔도 맛이 다르다. 첫애와 둘째애에 대한 부모의 관심도 똑같지 않다. 행동을 반복하거나 계속 소비를 한다고 해서 만족감이 2배, 3배 등 배수로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첫사랑도 마찬가지다. 한번도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심장에 천둥처럼 찾아온 첫사랑은 가슴을 때리지만 그것이 두번, 세번 반복되면 심장의 두근거림이 덜해진다. 
무엇이든 익숙해질 수록 새롭게 얻는 만족도는 떨어진다. 비단 첫사랑 뿐 아니다. 남이 갖지 않는 새 것을 원하고, 남이 해보지 않은 일을 처음으로 해보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들의 특종욕심도 똑같다. ‘최초’가 주는 효용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이탈리아 베로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레터스 투 줄리엣>은 50년의 시차를 두고 두가닥의 사랑이 엮여있다. 하나는 클레어와 로렌조의 오래된 사랑, 또하나는 클레어의 손자 찰리와 소피의 설익은 사랑이다.
 
클레어는 떠나는 소피를 바라보는 손자 찰리에 말한다.

“나처럼 50년을 기다리지마라. 가라 사랑을 잡으러. 빨리” (Don‘t wait 50 years like I did. Go! Go! Go!)  

소피와 찰리의 만남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뒤에 있다. 

소피의 원래 피앙세는 약혼자 빅토다. 하지만 처음 그들이 사랑했던 황홀한 관계가 사라지고 ‘습관적으로 전화를 하는’ 빅토에 소피는 질려버렸다. 비록 식당개업이라는 중차대한 일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빅토가 처음 소피의 마음을 얻을 시점에는 식당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만날 때마다 엔돌핀이 팍팍돌고, 세상이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심드렁해졌으니 한계효용이 체감됐다. 오래된 연인의 전형이다.  
 
이럴때 소피는 찰리를 만났다. 찰리는 새로운 한계효용의 시작이다. 자신에게 툴툴대는데도 끌리고, 그의 순수함을 새롭게 발견되는 과정은 새 한계효용이 주는 마법일 수 있다.  






처음 10이었던 한계효용이 반복되면 8, 6, 4 등으로 감소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0에 도달할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특정행동을 그만두게 된다. 연인사이라면 이별이고 결혼관계라면 이혼이다. 
그동안 들인 비용이 매몰비용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억지로 만남을 이어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경제학이라면 이 관계를 청산하라고 말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매몰비용은 다음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이 80이 넘어서도 황혼이혼을 해야 경제학에서는 ‘A+’를 받을 수 있다. 4대강 논란에서도 같은 이유로 "중단"을 외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지금까지 투입된 비용이 아까워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사랑의 한계효용은 얼마나 될까. 

미국 코넬대 신시아 하잔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의 열정이 사라지는 시점은 대략 18개월에서 30개월 정도라고 한다. 사랑에 빠진 뒤 1년 뒤면 열정의 50%가 감소한다. 사랑이 빠질때 생성되는 화학물질인 암페타민이 시간이 흐르면서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사랑의 한계효용의 만기일은 30개월인셈이다. 일본 학자인 모기겐이치로의 <뇌는 0.1초만에 사랑에 빠진다>에 나오는 얘기다.  




시간이 갈 수록 사랑의 효용이 체감되기만 한다면 모든 연인들은 헤어져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같은 대상이라도 한계효용이 새롭게 생길 상황을 만들면 된다. 새로운 취미를 만들던가, 일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권태기가 찾아올 즈음 생긴 아이는 가정에 새로운 활력을 준다.  

하지만 첫사랑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하나로만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어디 첫사랑을 합리적으로 하더냐 말이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아름답게 느껴지는데는 이유가 없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수천만원을 빌려주고 사기를 당했다는 사건사고는 그래서 비난할 수 없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자살을 감행하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합리적’이지 않다. 과거급제가 확실치 않은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가 현직 관료인 변사또를 내치는 것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 확실히 첫사랑에는 비합리가 만들어낸 심리적 버블이 있다. 
사랑의 감정이 무르익을 수록 거품은 커져간다. 절친한 친구의 충고도 먹혀들지 않는다. 이쯤되면 ‘비이성적 과열’이라 부를만 하다. 비이성적 과열이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1996년 미국 주식시장의 급상승에 대해 경고한 단어다. 한참 열애중인 연인들에게도 그린스펀의 경고는 유효할 것이다.  

클레어 역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로렌조 역을 맡은 프랑코 네로는 실제 부부다. 노년까지 함께 하는 이들에게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매번 새로운 한계효용을 찾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몰비용이 아까워서일까. 당연히 전자일 것이라 믿고싶다.  // 사진출처=네이버 영화정보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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