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이부진 남매가 각각 삼성전자와 호텔신라 및 에버랜드 사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유달리 ‘3대’에 필이 꼽혔다. 또 이들의 동생인 이서현씨도 며칠 뒤 제일모직 및 제일기획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그룹이 이병철-이건희에 이은 ‘3세 경영의 틀을 마련했다’는 것이 주요언론들이 전한 헤드라인이었다. 때마침 북한 김정은이 3대세습에 오르다보니 삼성의 ‘3대’도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할아버지-아들에 이어 손자손녀가 그룹을 접수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삼성은 ‘오너경영’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의 3대경영이 사실상 확정되자 그룹관련주가 4%내외로 일제히 올랐다. 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이재용, 이부진 남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만큼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반영됐다.  


하지만 정확히 보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싸움은 지금부터다. 

이재용 사장의 승진이야 이미 지난달부터 나왔던 얘기니 새로울 것이 없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부진 사장이다.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 전무에서 사장으로 단숨에 두단계를 승진했다.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에는 경영전략담당 사장으로 임명됐고, 삼성물산은 상사부문 고문직을 겸하게 됐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사내에서는 이재용 사장보다는 이부진 사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게 사실”이라면서 “이번 승진은 두 사람이 제대로 경쟁해보라는 그런 뜻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아들이 아닌 딸에게 그룹을 물려주기는 재계 생리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재계에서 맏아들에 대한 애정은 상상이상으로 강하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은 “힘들게 사업을 하는 이유가 아들에게 회사를 넘겨주기 위해서인데, 이게 없으면 회사를 계속 갖고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아들이 없다면 적당히 회사가 크면 팔아치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가들이 상속세나 증여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가들은 자신이 일군 기업에 대해 엄청난 애정을 갖고 있다. 자신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는 기업을 자신의 분신인 아들이 이어받기를 바라고, 이는 곧 가문을 이어가는 방법으로 인식한다. 의류업체인 캠브리지멤버스의 경우 아들이 회사에 대한 후계승계를 거부하자 창업주는 FnC코오롱에 회사를 팔았다. 

 폐쇄적인 재계 성향상 딸이 기업을 이어받게 되면 결국 다른 가문에게 회사를 넘겨주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부진 사장의 남편은 임우재 삼성전기 기획팀 전무. 그러니까 이부진 사장이 그룹을 이어받게 되면 결국 '이씨'삼성이 아닌 '임씨'삼성이 된다는 것이다. 남편과 사별로 그룹을 이어받은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 최영은 회장의 한진해운도 계열그룹들과 껄끄러운 관계다. 현대는 '정씨', 한진그룹은 '조씨'가문이다.  

이런저런 정황을 감안하면 이부진 사장의 역할도 오빠 이재용에게 경쟁심리를 북돋게 하는 ‘포커페이스’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사장에게는 그룹의 핵심인 전자·금융계열을, 이부진 사장에게는 유통·서비스계열을, 그리고 이서현 부사장에게는 패션·화학계열 등을 나눠준다는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지만 그룹의 핵심을 달라며 반발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남매의 난’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경영권을 둘러싼 ‘왕자의 난’ ‘형제의 난’ 등은 통상 그렇게 벌어진다.

오너경영인가, 전문경영인(CEO) 경영인가

이재용, 이부진 남매의 사장 승진은 한국경영계의 오래된 논란거리를 다시 꺼집어 냈다. 쉽게말하면 ‘주인있는 회사’가 좋은가 ‘주인없는 회사’가 좋은가다.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 경영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평가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오너경영에 대한 지지가 훨씬 강하다. 한국경제를 끌어오느 재벌체제 자체가 오너경영이었고 보면 이에 대한 지지세력이 훨씬 폭넓게 포진한 까닭이다. 전문경영인 회사는 민영화된 포스코, KT 등 몇 밖에 없어 비교 자체가 안된다.  

오너경영의 장점은 빠른 의사결정과 책임감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왕회장’이라 불렀던 것처럼 오너는 그룹에서 절대적인 권력자다.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에 대해 ‘보스형’이라 부르는 이유도 절대권력에서 기인한다고 보면 된다.  
오너는 자신의 회사를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의사선택을 내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단기간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위기 당시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채용을 넓히는 결정은 오너가 있는 회사만 가능하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CEO가 이끄는 자본주의는 망했다”며 “오너경영은 책임지는 사람이 있고, 경제위기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강 위원장은 상속세 폐지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인 있는 회사라고 무조건 잘 되지는 않았다. 대우그룹, 동아그룹은 설명이 안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오너의 무리한 인수합병전략이 빚은 그림자다. 
개인의 판단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오너의 과도한 욕심과 부족한 비전으로 회사가 망하게 하는 경우도 숱하게 많다. 

삼성그룹의 경우 2007년부터 사내에서 아이폰에 대한 보고서를 써내며 우려를 제기했지만 “무시할 수준”이라며 최고위층에서 이를 무시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오너경영은 독불장군이 돼 회사를 사유화할 수 있다. 제 아무리 주인이 있다고 해도 주주와 소비자, 근로자가 존재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집에 가” 한마디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중역을 즉석 해고했다는 모 그룹 회장의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경영투명성이 부족할 수도 있고, 의사결정에서도 합리성을 벗어날 위험이 크다. 탈세 등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현대그룹과 현대차의 복마전도 대표적인 오너경영의 대표적인 역작용으로 해석된다. 현대건설 인수는 시너지효과를 통한 그룹의 성장보다는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되찾기 위한 감정적 경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대건설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남편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는 아버지가 떠오르는 아이콘이다. 어느 기업이든 인수가 확정되면 주가하락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글: [대부] 한국형 CEO 리스크  http://cinemaeconomy.khan.kr/5


전문경영인 경영은 오너경영과 정반대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전문적인 마인드와 시각, 국제적 감각을 지닌 경영인을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 조직이 채 보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오기도 한다. 
전문경영인이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현대건설을 인수하려했을까? 인수자금이 부족한 현대그룹이나 자동차에 특화된 현대차 그룹에게 현대건설은 객관적으로 매력적인 물건이 아니다.  

장기성과를 염두해 둔 전략을 펼치기 어렵다는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 정확한 능력 검증을 위해 채용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걸리는 것도 단점이고, 경영인이 바뀔 때마다 회사전략이 큰 폭으로 수정될 우려도 있다. 또 결단력 있는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사실 CEO 경영은 1990년대 미국사회를 풍미했던 주요경영기법이었다. 열차기관사의 아들, 잭 웰치 전 GE회장은 경영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포스코는 주인이 없지만 여전히 세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3세 경영과 관련된 두가지 사례가 있다. 하나는 
도요타다. 2009년 6월 아키오 사장이 승진하면서 도요타 가문이 14년만에 회사를 다시 접수했다. 아키오 사장은 도요타 창업주인 도요타 기이치로의 장손이다.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너 경영자가 도요타를 맡아야 한다는 논리가 배경에 있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2010년 리콜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며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아키오 사장의 부적절한 대응은 일본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또 한곳은 닌텐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칭찬해 마지 않았던 닌텐도는 3세경영을 포기하고 협력사 직원을 CEO로 모셔와 대박을 터트린 경우다. 닌텐도 창업자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닌텐도가 소니,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리자 2002년 협력사 연구소 소장인 이와타 사토루를 CEO로 발탁했다. 사토루 사장은 조용한 구조조정과 수평적 의사결정을 통해 닌텐도DS와 닌텐도WII를 빅히트시켰다. 삼성전자가, 현대자동차가 협력사(혹은 하청업체)직원을 사장으로 모신다는 것, 한국 재계에서 가당치나 한 발상일까

포스코경영연구소(포스리)의 ‘도요타자동차 오너 복귀와 그 시사점’이란 보고서에회사를 살린 전문경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IBM의 루 거스너나 닛산의 카를로스 곤이 대표적이다. 또 파나소닉도 2000년 전문경영인 나카무라 구니오가 ‘성역없는 개혁’을 하면서 경쟁력을 회복시켰다. 도요타 역시 오쿠다 히로시가 부임해 ‘스피드 경영’을 통해 2년만에 순이익을 3배나 신장시켰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오너경영에 대한 집착과 대를 이은 세습경영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는 훗날 역사가 판단해 줄 문제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과도한 재벌들의 세습경영이 당장 한국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부의 대물림에 따른 근로의욕저하는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께 뻔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50대 그룹 중 26개 그룹에서 총수 자녀들이 임원이나 간부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다. 또 15개 그룹은 조만간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들의 상당수는 30대, 40대초반 였다.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 허윤홍 GS건설 과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또 박세창 금호아시아나 상무,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 등도 30대다. 그밖에 한화, LS, 동부, 태광, 하이트그룹도 조만간 차세대의 경영참여가 예상된다. 

대기업 계열사의 김모 과장은 “신입사원때 부터 별 생각없이 친한 동기가 알고보니 그룹가의 자녀라서 깜짝 놀랐다”며 “어쩐지 부장 등의 대우가 달랐는데,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저 자리에 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 서글프더라”고 전했다.  




이런 생각은 김과장만의 생각이 아니다. 

한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응답자의 88%가 10년전에 비교해 부유층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32%가 ‘부모경제력의 대물림’을 꼽았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로 한국사회는 흘러가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성장세가 둔화되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근로의욕마저 상실하게 되면 한국경제는 어디로가게 될까. 그 끝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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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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