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2일 코스피지수가 1914로 마감됐다. 10분전인 2시50분만 하더라도 1960을 넘나들던 지수였다. 단 10분만에 50포인트 이상 주가가 떨어졌고 시가총액 29조원이 공중에 날아가버렸다. 

도이치증권이 옵션만기일을 맞아 내놓은 1조3000억원의 매물이 빚은 참사로 뒤늦게 밝혀졌지만 국내 42개 증권사는 11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은 뒤였다. ‘11월12일 주가폭락’ 쇼크는 우리 자본시장이 큰 손들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생생히 전해주는 계기가 됐다.  

도치이증권 사태를 보며 떠오른 영화가 올리버스톤 감독의 <월스트리트> 시리즈다. 1987년 제작된 <월스트리트>와 23년 뒤인 올해 나온 <월스트리트2;머니 네버 슬립스>는 주가조작을 통해 상대를 파멸시키는 증권가의 흑막을 담고 있다. 두 작품 중에서는 전작인 <월스트리트>가 재미면에서나 구성면에서나 혹은 배우들의 연기력면에서 낫다는 평가가 많다. <월스트리트>는 마이클더글라스에게 88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선사했다.  





영화 <월스트리트>는 실패만 거듭하는 증권브로커 버드(찰리 쉰 분)가 금융계의 큰손,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 분)을 만나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야기다. 

게코는 싼 가격의 주식을 되산뒤 가격을 올려 되파는 주식시장의 투기꾼이다. 차익을 얻기 위해 작전세력을 동원하거나 내부정보를 이용하는 불법과 편법도 서슴치 않는다. 그는 성공을 꿈꾸는 버드에게 비법을 전수한다. 
이들은 또다른 큰손, 와일드먼이 애너콧 제철을 사들이려 한다는 정보를 얻은 뒤 주가를 고의로 끌어올렸다. 애너콧제철 인수에 애닳은 경쟁자는 비싼 주식이라도 살 수 밖에. 

 
제지회사인 델타사도 작전을 통해 낮은 가격에 주식을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다음 타켓은 버드의 아버지 카알(마틴 쉰 분)이 일하는 블루스타 항공사. 버드는 적자에 허덕이는 블루스타를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킨 뒤 높은 가격에 블루스타를 재 매각하는 방안을 꿈꾸지만 게코의 생각은 다르다. 투기꾼에게 경영이라니. 그냥 블루스타의 우량 자산을 분리 매각해 차익을 얻겠다는 구상이다. 

배신감을 느낀 버드는 와일드먼과 공모한다. 게코가 매입한 블루스타의 주식을 폭락시키는 방법으로 한방 먹이겠다는 거다. 블루스타의 주가는 주당 24달러까지 치솟다가 16달러까지 떨어지고, 손절매에 나선 게코는 수백만달러의 손해를 입는다.  


영화 <월스트리트>는 적대적 인수합병(M&A)과 주가조작을 통해 어떻게 주식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장은 항상 건강하게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은 '자본의 합법적인 투기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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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는 항상 변동한다. 주식투자자라면 주가를 내맘대로 움직이고 싶은 조작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주식시장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에 대해 주식투자를 제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펀드매니저라던가 증권사 직원, 증권거래소 및 금융당국관계자, 심지어 경제부 기자까지도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를 할 수없다. 업무상 알게된 정보를 이용해 주식시장에 투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많은 정보를 받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 부른다.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정보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때문에 정보 비대칭의 수혜를 누리는 자가 주식시장을 헤집는 것은 당연히 ‘반칙’이다.

영화 속 게코는 말한다. 

“정보없이 주식을 사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야. 나는 그런 짓 절대 안해”  

올리브스톤 감독의 부친은 증권브로커로 알려져 있다. 증권가의 생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어려운 주식스토리를 흥미롭게 푸는 데는 이런 배경도 뒷받침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주가조작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행위다. 공식용어는 아니다. 불공정행위가 법적용어다. 불공정행위에는 시세조종과 미공개정보 이용 등이 있다. 버드가 FBI에게 체포될 때 적용됐던 죄목인 ‘정보누설’과 ‘증권거래 조작’이 바로 이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연간 200여건이 불공정행위로 적발된다.  
불공정거래를 모니터하는 곳은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부다. 매일 20여명의 직원들이 모니터를 통해 시장을 관찰하며 비정상적으로 출렁이는 주가의 흐름을 잡아낸다. 의심이 되는 종목들을 금감원이나 검찰 등에 넘겨 본격조사에 나선다. 금감원과 검찰은 별도의 제보 등을 통해 기획수사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갈수록 방법이 교묘해져 ‘작전’세력을 잡기란 쉽지 않다는 게 담당자들의 얘기다. 작전을 위해서는 큰손, 대주주, 증권브로커 등이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 미리 가격과 물량을 짜고 가격을 올리거나 고가주문을 반복해 주가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허위정보를 흘려서 주가를 움직이는 사례는 다반사다.. 

<월스트리트>에서 게코는 주가조작의 전형을 선보인다. 외국계은행 등에 개설된 차명계좌를 이용해 다량의 주식을 사들인다. 증권브로커인 버드를 이용해 주식시장에 허위정보를 흘려 타 기관도 주식을 사도록 유도한다. 일순간에 '사자'주문이 몰리면 주가는 당연히 올라간다.  저가에 주식을 매입했던 게코는 이때 자신의 매물을 내놓는다. 단 몇시간에 수백억원을 쥐게되는 것이다. 주당 40달러에 형성돼 있던 애너콧제철의 주가도 이런식으로 순식간에 70달러 이상 급등하게 만들어 수백억달러를 거머쥐었다.
금융당국은 주가조작 의심을 하더라도 주동자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돈이지만 남의 이름으로 개설된 차명계좌나 자신의 영향력 아래있는 기관을 동원했기 때문에 증거 확보가 어렵다. 내부자고발이 없이는 검거가 쉽지 않은 이유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변심한 버드가 내부고발자다. 

국내법에 따르면 주가조작에 따른 손실액이 50억원이 넘으면 무기징역까지 처한다. 하지만 실제 법집행은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많다. 소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유연한 국내 법 감정 때문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살인이나 사기 등은 피해 당사자가 확실하지만 주가조작 등과 같은 행위는 피해자나 피해금액을 특정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부 기자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좋은 종목 하나 추천해 달라”다. 정보면에서는 기자들이 일반인보다 앞설 거라는 기대에서다. 실제 기자들이 많은 투자수익을 얻고 있을까

금융당국이 한때 증권사 담당기자를 중심으로 직접투자 여부를 조사했다고 한다. 내부정보를 이용한 사례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00여명의 기자를 조사했더니 단 3명만 미세한 투자수익을 기록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97명은 모두 손해를 봤다. 금융당국은 이후 기자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금감원의 조사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이 별 득을 못봤다는 얘기는 충분히 설득력 있다는 것이 증권가 주변의 얘기다. 
최초의 정보를 1차, 가장 마지막에 듣는 정보를 3차라고 할 때 기자들이 얻는 정보는 주로 2차정보다. 시장은 1차정보에 대해서만 기회를 준다. 2차 정보를 얻을 때 즈음이면 이미 가격이 반영된 상태고, 3차 정보에는 부풀려진 주가가 빠진다.  






주가조작의 역사는 3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97년 런던 의회는 주가조작퇴치법령을 제정한다.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다. 1814년 파리에서는 “나폴레옹이 동맹군에 패해 파리가 함락됐다”는 헛소문을 유포해 주가폭등을 야기한 사람이 법정에서 유죄를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주가조작은 회사규모가 작거나 경영권이 불안정한 경우 발생하기 휩다. 최근 대신증권 창업주가 사망하자 당일 대신증권의 주가가 8%이상 급등했다. 창업주 일가의 주식이 10%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M&A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증권가 주변에서 돌았기 때문이다. M&A가 추진될 때는 인수후보자가 지분을 확대하기 위해 시중에 나와있는 주식을 사들이려 할 것이기 때문에 통상 주가는 오른다.  

연예인이 연루된 주가조작설도 끊임없이 나온다. 유명 연예인들이 투자했다는 소리에 개미투자자들이 몰려들어 주가가 떴다. 그러자 이들은 보유한 주식을 팔아치워 수십억의 차익을 남겼다. ‘제로섬’게임인 만큼 뒤늦게 뛰어든 개미투자자만 눈물을 흘리게 된다.  


대표적인 주가조작의혹으로는 이명박 후보의 ‘BBK’사건이 있다. 김경준씨 등이 만든 BBK가 주가조작을 통해 300억원대의 차익을 남겼던 사건으로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주장이 제기돼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은 이 후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BBK를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위키리스크가 폭로한 미국 외교문서 BBK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BBK는 이명박 정권 이후 새로운 불씨가 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찰리 쉰이 맡은 '버드'의 극중 아버지는 그의 실제 아버지다. 극중 버드의 직장 상사인 ‘루’는 올리버스톤 감독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왔다는 후문이다. 부친의 이름은 ‘루이스 스톤’이다. 
<월스트리트>에는 올리버스톤 감독이 주식중개인들 틈에 살짝 끼어 카메오 출연한다.
23년후 제작되는 <월스트리트2;머니 네버 슬립스>에는 찰리 쉰이 게코와 조우하는 모습으로 우정출연한다. <월스트리트>에 대한 올리버스톤 감독과 출연진들의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돈은 잠들지 않는다(Money never sleeps),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등의 명대사는 <월스트리트2;머니 네버 슬립스>가 이어받는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정보, 연합뉴스>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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