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지난 3년간 발생한 검찰의 ‘문제있는 수사‘ 15건을 발표했다. 검찰이 부실하게 수사하거나 반대로 무리하게 수사했던 목록들이다. 여기에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로비의혹 수사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국세징수 총책임자가 비리수사를 피해 2년간 미국으로 도피해있지만 검찰은 “강제소환할 수 없다”며 수사를 손놓고 있는 이상한 사건이다.  
 

정조 16년 세금을 빼돌리는 공납비리가 만연한다. 정조는 ‘탐정’을 파견해 공납비리를 저지른 관료일당을 잡아내기로 결심한다. 밀명을 받고 특파되는 자가 조선 제일의 명탐정(김명민 분)이다. 공납비리와 호방살해 혐의로 옥에 갇힌 사또는 자객으로부터 살해 당한다. 명탐정은 누명을 쓰고 체포됐다가 감옥에서 개장수 서필(오달수 분)과 만난다. 한국판 셜록 홈즈와 왓슨의 탄생이다.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또 살해에 사용된 주요 단서가 각시투구꽃이다. 각시투구꽃은 한객주(한지민 분)와 노론의 거두 임대감의 조카며느리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한객주는 빼돌린 공납 세탁을 돕는다는 혐의를 받는 상인이고, 조카며느리는 지아비를 못잊어 절벽에서 몸을 던진 열녀다. 두사람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납세비리 얘기다. 조선시대에는 현물, 특히 지방특산물로 세금을 냈다. 이게 공납이다. 하지만 공납은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너무많은 양을 부담시킨데다 특산물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예컨대 부산은 신발을 납부하도록 했다고 하자. 지금은 신발공장이 망했다. 그런데도 조정은 계속해서 신발을 보내라고 요구한다. 시민들은 신발을 사서 조정에 납부해야 했다. 공납물품을 구매해주는 상인과 이들과 결탁된 세정관료들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신발값을 과도하게 요구한 것이다. 반드시 신발을 사야하는 시민들로서는 울며겨자먹기로 신발을 살 수 밖에.  

이 폐단을 막기위해 도입된 것이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쌀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했다. 공인은 쌀로 왕실이 필요한 특산물을 구입했다. 대동법은 조선의 상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 조달로 대규모 물건거래가 이뤄졌고 이를 중계한 공인은 거상으로 성장했다. 쌀은 오늘날 돈으로 바뀐다. 세금의 역사는 이렇게 변했다.  

조선명탐정이 파헤치려한 납세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벌백계를 가하는 중죄다. 국가재정을 위협할 수 있는데다 세정에 대한 불신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금징수에는 종종 비리가 따라 다닌다. 원채 큰 이권이기 때문이다. 세정공무원이 세금을 빼돌려 개인적 부를 축적하는 것이 원시적 방법이었다면 전산시스템이 마련된 지금은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뇌물를 받는 사례가 많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자신의 승진을 위한 청탁으로 사용된다. 어떤 식이든 국가로서는 걷어야 하는 세금을 못걷은 것이니 재정에는 그만큼 구멍이 생긴다.  



돈’줄을 쥐고 있다보니 국세청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린다. 권력자의 비자금 조성에 이용되기도 했고 정적에 대한 보복세무조사에 동원되기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았던 병원부터 점심을 즐겼던 식당까지, 이명박 정부 하의 국세청은 샅샅히 털어 수백억대의 벌금을 물렸다. 당연히 보복세무조사 주장이 나온다.  

영화에서 노론의 거두, 임판서는 빼돌린 공납을 고가의 그림으로 세탁한다. 조선시대 고가 그림이다보니 단원 김홍도의 그림들이 슬쩍 지나간다. 부정한 돈을 그림으로 세탁한다는 발상에 뜨끔할만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경제학에서 보는 조세의 원칙은 공평성이다. 공평성에는 ‘편익원칙’과 ‘능력원칙’이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재와 서비스를 통해 얻어지는 편익만큼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이 ‘편익원칙‘이다. ‘능력원칙’은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라 부자가 세금을 더내야하는 이론이 정착됐다. 고소득층의 경우 공공재를 이용할 가능성이 더 크고,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 재정은 원칙적으로 국가운영을 위해 필요한 돈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빈부격차를 줄이는 부의 재분배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고소득층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으면 고소득층은 쓸 수있는 가처분소득이 감소하게 되는 반면, 이렇게 걷은 세금을 저소득층에게 보조금으로 돌려주면 저소득층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이 생겨 양쪽의 격차가 줄어들게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20세기 들어 잇달안 누진세를 도입한 것은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의 분배가 절실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조세의 또다른 큰 원칙은 효율성이다. 세금을 걷는데 있어 사회적 비용은 가능한한 작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 소비를 위축시키거나 세법이 지나치게 복잡해 세금납부에 시간과 돈을 많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세금이 소비나 경기를 위축시키는지, 시킨다면 얼마나 시키는지는의 논쟁에 따라 감세와 증세 정책이 결정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레이건(감세)과 클린턴(증세)이, 한국에서는 노무현(증세)과 이명박(감세) 정부가 대척점에 서있다.  

조세에 대한 경제학적 토론은 미국에서 유독 많았다. 미국은 조세저항에서 탄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보스턴차 사건이다. 1773년 영국정부가 식민지 미국에 대해 과도하게 세금을 부과하자 화난 미국인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해 차를 보스턴항구에 버렸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 전쟁의 불씨를 일으키는 단초가 됐다. 어느나라든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는 재정정책과 세정질서가 엉망이 된다. 로마도 그랬고, 청나라도 그랬다.  




국세청은 세금을 걷는 ‘경제기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세금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 경제기관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국세청 자료는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을 만드는 주요자료가 되기도 한다.  

상당수 국세청장이 현직 혹은 퇴임 이후 영어의 몸이 됐다. 이주성,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다 한상률 전 청장은 미국에 사실상 도피해 있다. 그림로비, 현정부 실세의 청탁 등의 혐의가 있는 한 전 청장은 가히 세정비리의혹의 종합판이라 부를만 하다. 조선명탐정이라면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한 전 청장의 의혹을 틀림없이 밝혀낼 것 같다. 노론의 거두, 임 판서의 비리까지 밝혀낸 ‘명탐정’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왜 조선명탐정 같은 이가 없을까. 차이는 하나다. 조선은 정조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에는 없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정보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에는 손자병법의 병법이 인용된다. ‘다윗’ 명탐정은 ‘골리앗’ 임판서와과 싸움을 벌이기 위해서는 병법이 필요했다. 
 
적의 첩자를 속여서 역이용하는 반간계(反間計), 상대방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죽은 영혼이 다른 시체를 빌려 부활하는 차시환혼(借尸還魂), 그리고 ‘줄행랑’을 의미하는 주위상(走爲上) 등이 나온다.

 고대 중국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은 오늘날 직장사회의 생존전략책으로도 읽혀진다. 1980년 국내 드라마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신손자병법’이 방송된 것은 이런 연유떄문이다. 손자병법은 기업전쟁에 뛰어든 CEO들에는 전략지침서 역할을 한다. 독일경영컨설턴트인 베르너 슈반펠더는 <CEO를 위한 손자>
라는 책을 통해 손자를 “전략의 고수”라고 평가했다.  

손자는 말한다. “명예욕없이 앞으로 진군하고, 모욕을 두려워하지 않고, 퇴각하며, 오로지 나라를 보호하고 군주에게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하는 장수야 말로 나라의 보배다”. 나라 대신에 기업을, 군주대신에 직원들을 넣었을 때 합당한 CEO가 한국에 몇이나 될까. 군주 대신 국민을 넣는다면 대통령이 적용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 있었을까. 개인적으로는 딱 한명이 떠오른다.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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