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늙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두려운 것일까, 외로운 것일까? 마이클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은 ‘늙는다’라는 피할 수없는 인생의 명제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영국 런던에 톰(짐 브로드벤트 분)과 제리(러스 쉰 분)라는 이름의 노부부가 산다. 톰은 지질학자, 제리는 상담사다. 텃밭에서 오이와 토마토 등을 일구는 그들의 노년은 소박하지만 행복하다. 착한 아들도 한명 있다. 아직 짝은 없지만 조만간 생길 것 같다. 이들을 찾아오는 제리의 직장동료가 있다. 메리(레슬리 맨빌 분)다. 20대에 이혼한 그녀는 이제 홀로 중년을 넘어서려 한다. 그녀의 눈에 톰과 제리의 단란한 가정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그녀도 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던 메리는 작고 빨간 자동차를 사기로 결심한다. 새차가 아닌 중고차다. 아마도 돈이 없어 중고차를 사는 듯한데 그녀는 친환경론자를 자처한다. 술에 취해 불콰해진 그녀, 톰과 언쟁을 벌인다.

 메리가 말한다. “나도 알고 보면 아주 친환경적이야. 비행기도 안타지, 필요이상으로 큰 집에도 안 살지, 요리도 안하잖아”
 톰이 대꾸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해주잖아”
 메리가 되묻는다 “누가?”
 톰이 말한다. “사다가 먹잖아, 아냐?”
 메리가 화났다. “그건 아니지. 다들사먹잖아. 그런데 자동차 도로는 자기가 냈으면서, 톰. 더 많은차 더 많은차.... 최소한 난 중고차를 살꺼야”
 톰이 반격한다. “새차를 팔아야 경제성장이 돼”
 메리가 고집을 피운다. “하지만 내가 차를 사면 또 차가 생기잖아”
 톰이 끝낸다. “바로 그거야 메리”


 톰과 메리의 논쟁은 경제학에서 흔히 제기되는 국내총생산(GDP)논쟁과 닮아있다. GDP란 한 나라의 총소득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한 나라에서 일정기간 생산된 모든 ‘최종 상품‘과 ‘서비스’의 시장가치로 정의된다. 소비와 투자, 정부구입, 순수출(수출-수입)을 모두 합하면 숫자로 구해진다.
 문제는 GDP가 환경보호이나 가정가사 등 삶의 중요한 부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생산과 소비를 통해 발생한 ‘최종 상품과 서비스’만을 합치기 때문이다.

 메리가 3000만원짜리 신형차를 구입했다고 하자. GDP에는 최종상품인 자동차의 3000만원이 반영된다. 하지만 중고차를 사면 차값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미 신차출고때 차 가격은 GDP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중고차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수료와 취·등록세만이 GDP에 포함된다.

 제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면 어떨까. 제리는 그동안 월 100만원을 주며 고용했던 아주머니 대신 집안청소와 식사마련 등 가사를 직접 맡아했다. 제리가 실제 창출한 노동의 가치는 100만원이다. 하지만 이는 GDP에 잡히지 않는다. 시장에서 판매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용했던 아주머니의 비용이 줄어들고 자신의 월급도 없으므로 GDP는 대폭 감소한다.


 GDP를 높이기 위해서는 많이 쓰고 많이 버려야 한다. 지구를 구한답시고 재활용해서도 안되고 내 힘으로 해보자며 DIY를 해서도 안된다. 한국경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일요일에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어서는 안된다. 자장면을 시켜먹어야 애국자다.
 영화속에서 메리는 중고차를 샀기 때문에 영국의 GDP에는 별 도움을 못줬다. 하지만 음식은 사먹는다니 이 부분은 GDP에 기여를 했다.

 GDP가 높다고 삶의 질이나 행복도가 높다고 볼 수 있을까. 환경보호와 GDP는 일반적으로 비례하지 않다. 환경을 파괴해야 GDP가 올라가는 경우가 더 많다. 정부가 환경규제를 철폐한다면 기업들은 오염물질 배출을 염려하지 않고 저가의 물건을 마구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염물질을 줄이기위해 혹은 오염된 땅과 하늘을 치유하기 위해 돈을 들이면 GDP가 높아진다. 대규모 해양오염이 벌어진 곳 인근은 GDP가 높게 나온다. 방제작업을 위해 사람들과 방제도구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GDP는 소득분배도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1인당 GDP는 2만달러(2200만원)다. 4인가족이면 8만달러(8800만원) 정도는 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연봉 8800만원을 받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돈을 많이 버는 소수의 기업과 사람들에게 부가 편재돼 있다보니 평균치가 높아졌을 따름이다.


 또 GDP는 국제 비교를 위해 달러기준으로 계산되다보니 환율착시가 생긴다. 지난해와 올해 최종상품생산액이 10000원으로 같았다고 치자. 지난해는 환율이 1달러 1000원, 올해는 1달러 500원이다. 달러 기준으로 GDP를 환산하면 GDP는 지난해 10달러에서 올해 20달러로 100%나 뛰게 된다.


 <맨큐의 경제학>에 따르면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은 1968년 대통령선거에 입후보 했을 때 GDP에 대해 이같이 비판했다고 한다.
 “GDP는 우리 자녀들의 건강, 교육의 질 혹은 그들이 놀이에서 얻는 즐거움 등을 반영하지 않는다. 시의 아름다움이나 결혼생활의 건강함, 국정에 관한 논쟁에서 나타나는 예지, 공무원들의 정직성도 포함하지 않는다. 요컨데 GDP에는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고 우리가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이같은 논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정부 초기에 외쳤던 ‘7·4·7’(7%경제성장, 1인당 GDP4만달러, 7대 경제강국)은 참으로 공허한 국가아젠다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설사 7% 경제성장을 해 1인당 GDP 4만달러를 이뤘다 한들, 국민 삶의 질이 과연 거기에 비례해 나아졌을까. 우리는 행복했을까? 
4대강에 수십조원을 퍼부어야 했던 이유 중 하나도 실은 GDP성장 때문이었다. 정권초기 청와대에 있다 나온 한 인사는 "4대강은 솔직히 말하면 한국판 뉴딜"이라며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환경에 과연 유용한 정책이었을까? 여전히 논란이 많다.

 이런 GDP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안되는 것이 이른바 그린GDP다. Green GDP는 천연자원을 소비하거나 환경파괴의 대가로 경제활동이 이뤄졌을 경우 GDP에서 그 가치만큼 빼고 산출한다. 즉 자원고갈이나 환경파괴 등 사회적 손실을 화폐가치로 평가해 이를 GDP에서 빼는 것이다. 석유, 석탄, 가스 등의 사용은 GDP에서 마이너스 요소다. 하지만 삼림, 수자원, 신선한 공기 등은 GDP의 플러스 요소다. 그린 GDP가 도입됐다면 4대강 사업의 대차대조표는 어떻게 나왔을까? 플러스였을까 마이너스였을까?


GDP는 원칙적으로 인구놀음이다. 2010년 GDP기준,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2위가 됐다. 1위는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도 2040년께면 중국에 뒤따라 잡힌다는 전망이 나와있는 상태다.
GDP는 많이 쓰고 버리면 수치가 올라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GDP 몇위라는게 주요국들간 평가가 되는 이상, GDP를 좀 ‘부양’시키면 어떨까. 부동산 부양책을 펴거나, 신차 보조금을 주는 경우, 수출보조금을 줘 수출을 팍팍 늘려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나라나 억지로 GDP를 끌어올리려 하지는 않는다. 다음에 깊은 불황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가 이룰 수 있는 적정 경제성장(인플레에 영향을 주지않으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이를 잠재성장률이라 부른다. 

 마이클리 감독이 한국관객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였다.(개인적으로 그 영화제에 자원봉사를 했다. 수영만 요트경기장 대형스크린을 통해 만난 그의 작품은 정말이지...아아 환상이었다) 그의 이름을 알린 <비밀과 거짓말>처럼 그 작품은  영국가정의 평범한 일상을 즐겨 담는다. 영국날씨처럼 화면은 비교적 어둡고, 전개는 느리다. 하지만 영화의 뒤끝에는 뭔가 찌릿한 느낌이 남는 것. 그것이 그의 영화세계다.
 


 톰은 말한다. “지질학자는 해변에 가면 바다를 등지고 절벽을 바라보지” 아내 제리는 말한다. “지질학자의 아내는 해변에가면 절벽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보지” 분명 이들도 젊었을 때는 한방향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을 테다. 톰과 제리라는 이름처럼 말이다. 끝끝내 한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황혼이혼’이라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을 택하지만 결혼 그자체가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결혼이 확실한 것은 GDP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을 마련하고 새 가구를 넣고 가전기구를 구입하는 사이 GDP는 쭉쭉 늘어난다.//
<화면자료:네이버 영화정보>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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