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922호

[경제]주요공약 동력 상실 ‘경제레임덕’

ㆍ신공항·과학벨트 등 정권 후반기로 밀려나면서 정책결정 ‘빨간불’

동남권 신공항 무산의 후폭풍이 심상찮다. 부산·경남은 물론 대구·경북의 민심 이반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부산·경남은 “MB정부가 끝까지 부산·경남을 홀대한다”며 분노하고 있다. 대구·경북은 “대통령이 됐으면서 그것 하나도 못했냐”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4월 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 결정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핵심 지지층인 영남권이 이탈하면서 청와대와 여권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정례적으로 하던 국민 여론조사까지 중단했다는 뒷얘기가 나올 정도다.

무엇보다 집권 4년차라는 발표 시점이 문제였다. 권력누수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정책을 스스로 철회했다는 점에서 ‘레임덕’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유력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계속 추진되어야 할 일”이라며 일격을 가한 것이 아팠다.

신공항 무산 결정은 ‘정치적 판단’
정책당국의 한 관계자는 “정권 후반기를 맞아 결정을 내려야 할 민감한 이슈들이 많은데, 앞으로 정책 결정을 내리기가 쉽겠느냐”며 “사실상 경제 레임덕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4년차를 맞은 가운데 주요 경제공약의 추진동력이 급격히 상실되고 있다. 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도 갈등이 많은 정책을 정리하기 힘든 것이 정권 후반기다. 이런 와중에 세종시에 이어 불거진 동남권 신공항 논란은 현 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불러왔다.

문제는 ‘메가톤급’ 정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결정하기 곤란한 사업들은 대거 집권 후반기로 미뤘다. 집권 초기 논란이 있는 사업에 휘둘리다보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는 논리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힘 있을 때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힘 빠진 후반부로 미룬다고 해결될 리가 없다. 신공항 선정도 원래대로라면 지난해에는 매조지가 됐어야 될 문제다. 골치 아픈 일들이 일제히 뒤로 밀리면서 올해와 내년, 이명박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결정에 빨간 불이 켜졌다.

당장 논란이 되는 사업이 과학비즈니스벨트다. 과학벨트는 이명박 대선후보 공약집의 ‘충청’ 지역에 수록됐던 정책이다. 2008년 관계부처가 추진지원단을 만들었고, 2009년 2월 과학벨트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기 위한 협상용으로 과학벨트를 끄집어내면서 정치적 제물로 변질됐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사태가 꼬였다. 과학벨트가 굳이 충청권으로 갈 이유가 없다는 얘기들이 솔솔 흘러나왔고, 때마침 동남권 신공항 무산 불똥이 튀면서 영남과 호남 등도 유치전에 뛰어들게 됐다.

대전지역의 한 언론인은 “세종시 수정안 논쟁 때는 정부가 충청지역에 과학벨트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그 사이 과학벨트의 입지나 경제성에서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민영화 등 금융권 난제 쌓여
LH공사 본사 이전도 하반기를 뒤흔들 지역의 대형 이슈다. 참여정부 당시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따라 주택공사는 경남 진주에, 토지공사는 전북 전주에 각각 이전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합쳐 LH공사를 만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LH공사 통합 당시에도 본사를 어디에 둘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됐지만 정부는 “다음에 논의하자”며 뒤로 미뤘다. 김황식 총리는 “6월 안에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지만 과연 단칼에 결정내릴 수 있을 것이냐는 데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다. 자칫 잘못하다는 영호남 갈등이라는 ‘역린’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천의 한 관계자는 “LH 통합 당시 본사 문제를 마무리지었으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당시는 통합작업이 시급해 지역 반발을 불러일으킬 본사 문제를 적극 꺼내기 어려웠다”고 실토했다.

금융권에도 난제가 수북하다. 지난해 추진됐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올 들어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이 교체되고, 금융위원장도 바뀌면서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한 상태다. 우리은행과 우리투자증권, 경남·광주은행을 떼다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된 것이 없다. 이르면 2·4분기 내 로드맵을 내겠다지만 시장은 심드렁해 하는 분위기다. 경남은행을 인수하겠다며 지주회사로 전환한 부산은행과 대구은행만 괜한 헛심을 썼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지방 이전을 놓고 전북과 경남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4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 근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유창희 전북도의회 부의장이 경찰 관계자에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진행된 산업은행 민영화도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전 기획재정부 장관인 강만수 회장이 산은지주 회장으로 온 것은 정책금융공사 하나 떼어낸 채 정지해버린 산은 민영화 작업을 재개해보자는 구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산업은행+우리투자증권+정책금융공사+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를 이뤄 이를 글로벌 IB로 키운다는 얘기도 들리고, ‘산업은행+우리은행+기업은행’으로 해서 메가뱅크로 가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자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후자는 강만수 회장의 지론이다.

하지만 우리금융과 산업은행의 민영화같이 은행산업의 큰 틀을 흔드는 작업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는 전망이 많다. 곧 선거 모드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은행노조의 반발이 극심할 은행 간 인수·합병(M&A)을 밀어붙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관료들도 꺼리는 눈치가 역력하다. 무리하게 은행 인수·합병에 나서다 추후 책임론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 말 대규모 사업은 차기 정권에서 ‘게이트’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금융, KB금융, 하나금융, 산은지주 등 5대 금융지주 중 4개 지주 회장이 이명박 정부의 복심에 가까운 ‘실세’라는 점도 부담이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우리금융은 민영화 얘기 나온 지가 10년째, 산업은행은 3년째”라며 “2년 안에 로드맵을 정해 은행산업 재편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쉽지 않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맥이 닿아 있다. 당초 3월이면 무난할 것으로 보이던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4월이 다 가도록 인수 승인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4월 27일 금융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 예정이지만 이날 인수건이 최종 허가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관료들이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정이 예정된 안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다. 또 하나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이다. 두 안건이 동시에 올라갈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올라갈지 아직 예견하기 힘들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뭐라도 하긴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운을 뗀 상태다. 하지만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위해 외부기관에 의뢰했던 법리검토에서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의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금융당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 상태다.

3월 15일 오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금융관련 노조원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박탈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금융당국이 임시회의 일정을 재·보궐선거일인 4월 27일로 잡은 것에 금융권은 주목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원래는 4월 20일 정례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국회 때문에 한국은행 부총재, 금융위 부위원장 등 핵심 참석자들이 회의에 나올 수 없어 일주일을 연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환은행 노조와 시민단체 등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것 아니냐”며 “특히 이날 매각 승인을 내주더라도 재·보궐선거로 인해 이슈가 묻힌다는 것을 감안했을 것”이라며 의심하고 있다.

이해당사자가 뚜렷하지 않은 공약은 슬그머니 뒤집히고 있다. 경제적 타당성이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추진했다 자체 부실이 커지면서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경우다. 대표적 사례가 ‘반값 아파트’다.

‘물가잡기 엄포’도 시장에서 안 먹혀
4월 5일 보금자리 주택의 가격을 당초 시세의 ‘반값’에서 80% 이상으로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보금자리주택 건설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발의됐다. 발의자는 한나라당 정진섭 의원이지만 사실상 정부 입법을 대신해준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반값 아파트’로 이름 붙인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정부의 대선공약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9년 8월 제27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두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마련해주는 정책”이라며 애정을 내보였다.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도 “이 대통령의 대표적 친서민 대선공약”이라며 “단순히 정책 목표에 맞춰 급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대선 때부터 구상을 가다듬었고, 올해 들어서도 8개월이나 보완해 만든, 이른바 땀이 배어 있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LH공사의 부채를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만들며 위기로 몰아넣었다. 아파트를 비싸게 만들어서 싸게 공급하는 부담은 LH공사의 몫이었다.

무기력한 분위기는 물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정권 초기 ‘MB물가지수’를 개발하는 등 물가잡기에 전력을 기울였지만 최근에는 ‘물가잡기 엄포’가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다. 특히 기름값을 잡겠다고 나섰지만 정유사들의 저항에 부딪히며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잇달아 실효성 있는 물가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저도 정말 이 힘든 짐을 내려놓고 싶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는 얘기가 스스럼없이 나오는 등 정부의 정책 수행 기능이 밑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힘 빠진 정부의 모습은 경제관료 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윤 재정부 장관은 6개월이 넘도록 교체를 희망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윤 장관을 대체할 인물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차기 장관감으로 고려했던 인사들은 병역, 부동산 문제 등이 얽혀 청문회를 통과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문회를 했다가 도덕성 시비 등에 걸려 낙마하게 되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진다”며 “야당뿐 아니라 여당도 각을 세울 텐데 제대로 된 인물을 뽑기가 쉽겠느냐”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한 연구원은 “올해 들어 청와대에서 요구하는 자료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며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그동안 벌인 일들에 대한 마무리나 잘하자는 분위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청와대에 가보니 신공항이나 과학벨트 등으로 인해 정신이 없더라”며 “새로운 일을 벌여 판을 확대하거나 첨예한 갈등이 있는 사안을 끄집어내 깔끔하게 정리할 힘도, 사람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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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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