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칸. 낯선 사람들과 장소를 두려워 한다. 노란색과 날카로운 소리는 견딜 수 없다. 사람들은 그를 ‘자폐아’라고 부른다.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유통기한이 넘긴 것은 팔지도 않는다. 행여 벌이 전파 때문에 길을 잃고 죽을까봐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론자다. 착한 행동이라고 믿으면 무조건 실행한다. 그런 그가 과연 비정상일까.



 카란 조하르 감독의 <내이름은 칸>은 세상의 편견에 맞선 천재 자폐증 남자, 칸(샤룩 칸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도를 떠난 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그곳에서 칸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또한명의 여인, 만디라(까졸 분)를 만난다. 만디라는 사미르라는 아들을 둔 싱글맘. 칸은 이슬람, 만디라는 힌두다. 인도에서 이슬람과 힌두는 심각한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그 벽도 넘는다.
 그때 9·11이 터진다. 이슬람은 졸지에 미국사회에서 ‘폭력과 호전’의 상징이 됐다. 칸의 가정도 변화를 피해가지 못한다. 힘들게 연 미용실에는 사람들이 더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아들 사미르는 아이들의 구타에 죽임을 당한다.
 아내 만디라가 절규한다. “무슬림 남자와 결혼하는 게 아니었어. ‘칸’이라는 이름이 내 아들을 죽였어”
 만디라는 칸에게 요구한다. “당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미국대통령 앞에 가서 얘기하라”. 칸은 믿는다.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대통령 앞에 말해야 비로소 만디라 앞에 나타날 수 있다고. 칸은 무작정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떠난다.
 칸에게 세상은 편견 덩어리다. 태어났을 때는 자신의 자폐를 보는 세상의 불편한 시각과 싸워야 했다. 9·11이후에는 무슬림을 향한 혐오에 맞서야 했다.



 행동경제학에서 편견을 부르는 용어가 있다. ‘확증편향’이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믿음에 맞는 정보는 재빨리 받아들이지만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해버리는 형태를 말한다. 쉽게 설명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흘려버리는 행동이다.
 과거에 지불한 비용이 크면 클 수록 확증편향이 강해진다. 9·11에서 지워지지 않은 충격을 받은 미국인에게 무슬림은 무서운 테러리스트로 각인됐다. 집단에 대한 특성이 정해지면 개개인의 특성은 무시된다. 이슬람 성을 가졌으면 그는 잠재적인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래서 무슬림은 공항에서 특별검색을 받고, 길거리에서 조롱을 당한다.
 확증편향은 소비자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명품 핸드백은 비합리적으로 비싼 가격을 제시해도 소비자는 돈을 지불한다. ‘명품은 좋다’는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쌀 수록 좋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더해진다. 소재나 디자인이 다른 제품과 다를바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는다. 확증편향은 이미 합리적인 판단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더많은 돈을 주고산 명품일 수록 확증편향은 더 심해진다. 자신의 구매행동을 합리화해야하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이 일단 소비자 마음에 형성이 되면 제거하기도 어렵지만 전이도 매우 강하고 빠르게 이뤄진다. 특히 특정대상에 대한 첫인상이 확증편향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예를들어 애플사의 첫제품으로 아이폰을 샀는데 품질과 서비스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하자. 이후 출시되는 아이패드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게 될까, 하지 않을까. 반대로 하필이면 불량 아이폰에 엉망인 서비스까지 접했다면 다음번에도 애플 제품을 구입하게 될까?

 확증편향은 ‘심리게임’인 금융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같은 증거를 보면서도 해석을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사태를 몰고온 서브프라임사태는 수익률 경쟁에 눈이 먼 나머지 “지나친 유동화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한데서 비롯됐다.
 처음 주식이 오를때 투자자들은 경계한다. 왜 오르는지, 하락요인은 없는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대단한 고민을 해본다. 그러다가 ‘강세장’이라는 판단이 서면 이때부터는 모든 정보가 주가가 오를 이유만 찾는데 집중된다. 특히 ‘투자’라는 행위를 했다면 확증편향은 더욱 강해진다. 증시가 상승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낙관적인 뉴스가 크게 보인다. 진흙속 진주를 찾아 대박투자를 하는 사람들일 수록 확증편향은 심하다.


 특히 위험한 것이 CEO의 확증편향이다. CEO의 확증편향은 기업의 운명과 직결된다. 특히 자존감이 강한 오너들은 확증편향에 빠질 개연성이 크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 기대, 생각을 지지해주는 정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전망을 아랫사람들이 ‘맞다’고 맞장구를 쳐주면 매우 반갑다. 반면 쓴소리는 가치를 축소시킨다. 심지어는 ‘나에게 도전하느냐’는 불쾌감도 든다.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은 “우리의 뇌는 결론부터 성급하게 내리고, 다른 대안을 고려하려고 하지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확증편향은 이성에 관한 뇌의 영역이 아닌 감정을 처리하는 뇌 영역의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최근 연구는 밝히고 있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는 확증편향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확증편향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기대에서 종종 나타난다. “내 아이는 착한데 나쁜 친구들 때문에 망쳤다”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 등은 ‘아이에 대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대표적인 확증편향이다. 아무리 자기 아들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도,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말해도 부모들은 이런 ‘정보’를 선별해서 버린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막대한 고통과 시간, 돈을 쓴 만큼 확증편향도 그만큼 심할 수 밖에 없다.
 

 

 LG경제연구원은 <착각에 빠진 리더, 의사결정을 망친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CEO가 경계해야할 착각의 유형 5가지 중 하나로 확증현향을 들었다. ‘확증편향에 빠지면 더 중요할 수 있는 부정적 평가나 반대의견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확증편향은 “아무리 봐도 내말이 맞다”는 심리다. 모든 정책들은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장점이 단점보다 크다고 예상되는 경우 정책은 시행된다. 이때도 단점의 문제는 계속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정책결정을 할 때 장점을 과도하게 부각하고, 단점은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확신과 결론이 같다면 문제가 없지만, 다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빌어올 수 있다. 나심탈레브 교수는 그것이 ‘블랙스완’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그밖에 리더가 빠지기 쉬운 착각에는 근거없이 다른사람들도 자기처럼 생각할 것이라 생각하는 ‘잘못된 합의효과’,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기 고양적 편향’이 들어있다. 또  자신에게는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현실적 낙관주의’, 나에게 불가능은 없다식으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통제의 착각’등도 리더의 대표적인 착각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편견에 빠지지 않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LG경제연구원은 “리더 스스로가 평소자신을 되돌아보라”며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구하고 항상 겸손의 미덕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소 도덕군자적 해법이지만 따지고보면 이 이상 답변도 구하기 어렵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나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그러면서 유일한 길이다.

 
 확증편향은 심리학에서 또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인지부조화’다. 2008년 뇌물혐의로 기소된 전군표 전 국세청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인지부조화’라며 ‘유죄’를 선고한다. “내 기억은 그것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자존심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기억은 결국 자존심에 굴복한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 재판부의 판결은 오랫동안 회자됐다.

 칸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My name is Khan. I'm not a terrarist”(내이름은 칸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무슬림은 위험하다는 미국사회의 ‘확증편향’을 깨고 싶은 것이다. 때마침 미국도 오바마를 선출하면서 흑인은 대통령이 못된다는 ‘확증편향’을 깼다.



 확증편향은 미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립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확증편향이 기생할 여건이 돼 있다. 인도는 1992년 12월 힌두교도와 무슬림간 극단적인 종교갈등을 겪었다. 극우 힌두교인들이 바브리 이슬람 사원을 파괴시키자 인도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 3000여명의 사상자를 남겼다. 힌두교를 혐오하는 무슬림의 비난에 칸의 어머니는 말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좋은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 하지만 행동이 다를 뿐 다른 차이는 없단다” 칸의 어머니는 무슬림이지만 ‘이슬람=선, 힌두=악’이라는 이분법에 빠지지 않는다. 되레 사람 자체 대해 확증편향을 갖지말라는 지혜를 전한다.

 경상도냐 전라도냐, 남자냐 여자냐, A형이냐 B형이냐, 우리사회에도 수많은 확증편향이 존재한다. 다문화 가정이 확대되면서 피부색에 대한 확증편향은 머지않아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을 언급하면 무조건 빨갱이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남북교류나 남북화해를 얘기하면 빨간덧칠부터하는 사례가 심심찮다. 과도한 확증편향은 사회의 건전한 대화와 문제제기를 막는다.
 



 <내 이름은 칸>은 인도판 헬렌켈러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블랙>과 많이 닮았다. 예븐 색감을 쓰는 것도 유사해보인다. <블랙>처럼 <내이름은 칸>도 국내에서 입소문 속에 조용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강한 것이 인도영화의 특징이다. ‘볼리우드’(봄베이+할리우드)의 부상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사진출처=네이버 영화정보>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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