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창사이래 최대 파격 인사… 부서장 55명 중 47명 교체

"완전 다 섞어버렸네요. 제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네요. 금융감독원이 생긴 이래 10년 만에 최대폭 인사예요.”

4월 28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인사가 발표되자 원내 곳곳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쏟아졌다. 현직 부서장 55명 중 85%인 47명이 교체됐다. 자리에 유보된 사람은 8명에 불과했다. 권혁세 금감원장 취임 후 한 달 만에 단행된 인사가 이처럼 파격적이었던 것은 그만큼 금감원 내에 위기의식이 컸다는 의미다. 4월 한 달간 금감원은 각종 사건사고로 얼룩이 진 상태였다. 인사 시점을 잡지 못할 정도였다. 사고의 진원지가 됐던 저축은행과 기업공시담당 부서장은 전원 교체됐고, 일부는 보직을 받지 못했다.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이 4월 27일 부산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앞에서 영업정지 전날 부산저축은행에서 불법 인출사태 가 빚어진 것을 정부당국에서 알고 있었다며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은 1999년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의 조직이 통폐합돼 탄생한 최대·유일의 금융감독기구다. 각기 흩어진 감독기구로는 효율적인 금융감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한데 합쳐졌다. 직원만 1500여명이 넘는다. 2000년 인사 때 금감원은 각 권역에서 들어온 직원들을 섞었다. 보험전문가는 증권으로, 증권전문가는 은행으로, 은행전문가는 보험으로 보냈다. 이번 인사는 11년 전 그때보다 더 섞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권혁세 원장 취임후 대형사고 줄줄이
3월 말 취임한 권 원장은 한 달간 진한 신고식을 치렀다. 현대캐피탈 전산망이 해킹당해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이어 농협의 전산망이 문제를 일으키며 거래중지 사태가 빚어졌다. 당장 금융계의 IT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어 2월 17일 영업정지가 된 부산저축은행이 대형사고를 쳤다. 영업정지 전날 VIP 고객을 불러 예금을 부당인출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KO 펀치는 원내 비리와 부패였다. 4월 말 들어 4명의 금감원 전·현직 직원들이 구속되고 1명이 체포됐다. 4월 23일 대검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 수사과정에서 적발한 비리 혐의로 금감원 부산지원 수석조사역(3급) 최모씨를 구속했다. 최씨는 부산저축은행이 친인척과 관계있는 건설사에 대출해주도록 알선한 뒤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월 26일에는 전·현직 금감원 직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김주원 부장검사)는 유상증자를 허용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금품을 챙긴 전·현직 금감원 직원 3명을 구속했다. 2008년 금감원을 나간 김모씨가 로비스트가 됐고, 현직 선임조사역 황모씨와 전직 직원 조모씨가 각각 3129만원과 1000만원을 받았다. 이 중 한 사람은 금감원 바로 옆건물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황모씨의 구속에 대해서는 금감원 내 동료 직원들도 놀라고 있다. 평소 무난한 성격에 동료들의 신뢰가 두터웠던 사람이어서 “설마 돈을 받았겠느냐”며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다.

이어 광주지검도 금감원 저축은행서비스국 부국장(2급) 정모씨를 체포했다. 보해저축은행의 검사에서 선처를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 저축은행 대표로부터 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금감원 전·현직 직원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자 금감원은 충격을 받았다. 2000년 초반 진승현·정현준·이용호 게이트 등 신용금고(현 저축은행)가 연루된 불법대출과 주가조작 사건 이후 최대 비리였다. 금감원의 한 국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기관의 명예가 실추되고 내부 사기가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구속자들을) 총살이라도 시키고 싶은 심정”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또다른 직원은 “지방에 사는 친척이 혹시 별문제 없느냐고 전화했더라”며 “구속된 직원의 성이 나와 같다보니 벌어진 일”이라며 씁쓸해 했다.

3월 28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 취임식에서 권혁세 신임 원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감원의 체면이 깎인 것은 이뿐이 아니다. 검찰이 부산저축은행을 정조준하면서 조사했던 직원들이 참고인 자격으로 줄줄이 불려갔다. 검찰은 예금 사전인출의 원인이 된 영업정지 정보를 금융당국자들이 흘린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금융당국자들의 관여가 확인될 경우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에 대한 시선을 악화시키는 일은 또 있었다. 지난해 ‘11·11 옵션 쇼크’ 사건을 조사했던 이모 전 국장이 김앤장법률사무소로 가겠다며 사표를 던졌다. 11·11 옵션 쇼크란 지난해 한국 도이치증권이 주식시장 장마감 10분을 남기고 2조3000억원어치의 주식을 내다팔아 코스피를 53포인트 급락시킨 사건이다. 금융당국은 도이치증권 임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파생상품 거래 등 일부 업무는 6개월간 영업정지를 시켰다. 이 전 국장이 이 사건을 직접 조사했고, 김앤장은 도이치증권의 변호를 맡았다.

조직 전체 뒤섞어 업계유착 차단
현행 규정에 따르면 금융위(4급 이상)와 금감원(2급 이상) 퇴직자는 퇴직 후 2년 동안 퇴직 전 3년간 업무와 관련된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다. 로펌은 취직 금지대상이 아니다. 이모 전 국장의 이직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정서법’을 무시했다. 가뜩이나 금융당국과 업계 간 유착의혹이 흘러나오던 때였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직전까지 자신과 대결을 벌였던 로펌으로 사표를 내고 옮긴다는 것은 모양새가 그렇다”며 “아무리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해도 밖에서 어떻게 보겠느냐”고 말했다. 동료들의 여론이 악화되면서 이 전 국장은 결국 김앤장 행을 포기했다.

금감원 직원들의 비리가 잇따른 데는 내부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보험, 은행, 증권 등 업권마다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한곳에서 너무 오래 두다보니 업계와 유착이 될 개연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또 우수 직원은 본원, 그렇지 않은 직원은 지원으로 내모는 금감원 특유의 조직문화도 문제를 키웠다는 자성이 나온다. 지방의 경우 금감원 부국장급이 내려가면 사실상 기관장으로 대접받는다. 형식적으로는 ‘유배’지만 내용적으로는 ‘영전’이 됐다는 말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지방으로 발령을 받으면 사실상 승진 기회를 잃는 것으로 해석되다보니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방생활을 하는 임직원들이 많았다”며 “금감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생각을 많이 갖다보니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권혁세 원장의 파격인사는 이같은 배경 아래서 나왔다. 조직 전체를 뒤섞어 업계와의 유착 가능성을 사전에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다. 후속 인사에서도 파격인사는 계속될 것으로 점치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저축은행 사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 금융전산망 사태 등 굴러가는 현안이 많은 상태에서 부서장과 부원들을 동시에 바꿔버리면 한동안 업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10년 전 금감원 인사쇄신 때 각자의 업무를 익히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며 “금감원 직원들이 얼마나 빨리 각 업권에 적응하느냐가 인사쇄신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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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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