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서 주민투표를 한단다. 그 내용이라는 게 무상급식인가본데, 투표를 하니 마니, 시끄럽다. 오늘도 쏟아지는 게릴라성 호우에, 휴가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나름대로 정치권에서는 논란인가 보다.
이번 투표는 특이하게 투표율에 목숨을 걸고 있다. 투표율이 30몇프로가 안되면 무효라나? 10%가 됐던, 90%가 됐던 문제가 없는 총선, 대선과는 다른 투표인가 보다.

페이스북도 시끄럽다. 혹자는 투표를 꼭해달라고, 하고 혹자는 하지 말라고 한다. 진보쪽에서도 기왕이면 투표를 해서 반대해달라는 사람이 있고, 아예 거부해서 무효시키는 게 좋다는 사람이 있다. 보수쪽에서는 꼭 투표를 해서 투표율을 높여달란다. 내가 투표해서 반대할지 찬성할지 어찌알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투표가 상당히 불쾌하다. 총선, 대선에 재보궐까지 매번 일일이 선거판에 끌려가는 것도 모자라 주민투표까지 나가야 한다니 짜증난다. 더구나 이 투표는 몇달전만해도 계획에 없던 투표다. 정치인 자기들끼리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판이다. 투표를 청구한 것은 시민들이라지만, 눈가리고 아웅하지 말자. 이 선거로 득볼사람, 손해볼 사람이 누군지는 명확하다.
그래서 이번 투표는 내가 하고싶어, 해야만 하는 그런 투표가 아니라, 웬지 끌려나가서, 투표에 동원되는 그런 기분이다. 적어도 내 느낌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이 대선에 나가든 말든, 서울시장을 하던 말든 그것은 그의 선택이지, 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마치 이 투표에서 이기면 무슨 대단한 승리를 한 것처럼, 혹은 지면 대단한 패배를 한 것처럼 여기는 것 자체가 볼썽사납다. 오늘 불출마를 선언했다가 내일 출마를 선언하는 것이 어디 한두번이던가. ‘국민들의 여망을 무시할 수 없어서’라는 한 문장만 붙이면 그만이다. 그걸 믿어라고? 오세훈이니까?

그냥, 나의 정치인생에 중요하니 투표해 주십사...이렇게 얘기하면 솔직해라도 보인다. 대선출마를 하니 마니, 시장직을 거니마니 머릿속에 셈법 복잡하게 돌아가는 것은 신문 지면을 통해 이미 여러번 소개됐다. 여든 야든 국가재정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 향후 대선을 위한 놀음이라는 것을 모를 서울시민이 어딨나?

그래도 혹시나 할만한 투표인가 싶어 내용을 들여다 봤다. 그냥 껄껄껄 웃었다. 무상급식 찬성과 반대, 간명하게 두줄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소득하위 50% 학생들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소득 구분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말 참으로 꼬아놨다. 자고로 질문 긴 것 치고 깔끔한 문제 못봤다. 이렇게 복잡해서야 투표나 제대로 하겠나. 암튼 심호흡 크게 하고 다시 봤다. 무상급식을 영원히 안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던 2015년부터는 무상급식 실시 여부를 다시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투표에 이겨서 확실한 것은 초등학교는 3년, 중학교는 2년 연기한다는 것 뿐이다. 그 기간동안 서울시가 써야할 돈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다. 그거 아끼자고 엄청난 홍보비에 선거비용을 쏟아붓는다니......이건 꼼수다.

꼼수 소리 안들으려면 '내 임기 중에는 무상급식 전면실시 반대'라고 간명하게 표현했어야 했다. 처음엔 '2014년까지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라기에 '2015년부터는 전면 무상급식 시행한다'로 읽었다. 이런 헤깔리는 문구, 이번 투표가 정치투표일뿐 이라고 악평하는 이유다. 

내가 알기로 무상급식은 과천 등 돈있는 지자체에서 10여년전부터 먼저 시작했다. 이후 성남 등으로 확산됐다. 돈있는 지자체(대부분 한나라당 시장과 국회의원이 있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무상급식을 해왔다. 부산, 대구, 경북, 전북 등 가난한 지자체들만 못했지 재정 넉넉한 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그게 별스럽게 이슈화되는 까닭도 모르겠고, 그걸로 나라 망한다는 사람들은 더더욱 이해 못하겠다.

4대강에 들어가는 20조원, 그 지류에 들어가는 20조원, 합이 40조원이다. 비만 오면 진흙을 긁어내야 하는 4대강 주변 공원에 투입해야하는 유지비는 또 어떤가. 그거 투입하고도 대한민국은 끄덕이 없다고 한 사람들이 누군가.

그냥 깔끔하게 무상급식 찬성. 무상급식 반대. 이렇게 투표를 했으면 또 그런가 싶다. 그런데 길어야 3년 연기하는 사안을 가지고 눈에 핏발서며 싸워야 하는 이유, 솔직히 모르겠다.
이번에 단계실시를 고수해야 다음 시장이 부담없다?? 그건 같은 얘기다.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한 뒤 돈이 너무 많이 들면 여론 자체가 하지말자고 할꺼다. 다음 시장 후보들이 당장 '긴축'을 선거 이슈로 들고 나올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투표의 결정효력은 3년에 불과하다. 광역시군 통폐합이나 방폐장 유치와 같은 반영구적인게 아니라는 말이다. 
 
대선 나간다는 분이 이런 아젠다를 가지고 주민들을 불러모으는 것 또한 이해가 안된다. 이렇게 속이 좁나. 기왕할려면 통큰 담론으로 한판 붙으셔야지, 2년 3년짜리 정책두고 끄적끄적 댄다니 말이되나. 대한민국에서 서울을 독립시킨다던가 서울 복지정책 전면 폐지 같은 '큰 넘'으로 한번 붙으셨다면 투표 한번 해볼까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을 테다. 이판은 
내가 끼어서 거수기 노릇할 이유를 도무지 찾지 못하겠다. 투표장에 찾아갈 시간이 아깝다.

한때 정치부 기자 생활을 했다. 그때 총선, 대선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에게 ‘민주시민은 투표로 의사를 표현한다’며 독려했다. 투표율이 10%아니 1%만 되도 ‘유효’한 투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선량을 뽑아줬으면 정치적인 사안은 자기네들끼리 국회나, 서울시 의회에서 합의할 일이다. 그걸 못해 쩔쩔매다 시민들에게 다시 투표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파렴치 해보인다. 그것조차도 합의 못하는게 무슨 대의민주주의인가. 세비가 아깝다. 차라리 직접 민주주의를 해버리지.
같은 문제를 안고 있을 경기 부산 경남 대구 광주 대전은 주민투표를 안한다. 오직 서울뿐이다. 시장의 정치력 부재 혹은 대선에 대한 탐욕, 둘 중하나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지 않은가.


설사 30몇프로 넘겨셔 유효투표가 되고, 그래서 누가 이기고 졌다고 한들, 내년 대선까지 그걸 동력으로 갖고가긴 어렵다. 한국사회는 한달만 지나도 ‘0’부터 시작한다. 투표율이 적어도 60-70%에 이를 것이 아니라면 30몇프로나 40몇프로나, 혹은 20몇프로나 똑같다.
 
투표일? 모르겠다. 내겐 특정인의 정치인생보다 많은 서민들을 나락에 내몰 세계경제와 국내금융의 흐름을 주시하는게 더 급하다. 한마디로 서울의 주민투표는 ‘정치과잉’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 투표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나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 열심히 싸워서 좋은 후보나 많이 만들어내라. 단 당신들이 만든 링안에서 당신들끼리 싸워서. 더 이상 링밖에 있는 애먼 서민들을 끌어들이지 마라. 그 투표 말고도 신경쓰야할 일이 너무 많다. 당장 내 밥벌이를 위해 해야할 일들이 산더미다. 나는 당신들의 '봉'이 아니다.//

Posted by 서툰경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고교교사 2011.08.17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쁜 정치인은 투표를 하지 않는 훌륭한 시민들에 의하여 선택된다고 늘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번 투표는 정치인을 뽑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 대선출마라든가 시장직을 거네마네 하는 꼼수이기도 하거니와 아이들 밥먹이는 일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기에 저는 기본적으로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투표이기도 하고 저들 주장대로 '나라 경제를 거덜낼 것'인가를 판단하라는 해괴한 투표이기에 더더욱 투표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4대강 삽질에 꼴아박는 세금만 생각하면 분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그래도 시민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이번 투표에 결단코 참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육총연맹이란 단체에서도 교사들을 동원하여 투표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는데 정말이지 같은 교사로서 참담함을 넘어 연민을 느낍니다.

    이번 투표에서 만에 하나 33.3%로 아이들 밥먹이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해도 전국적으로 대세는 이미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고 내년에는 두 차례의 진짜 나쁜 정치인들을 걸러낼 호기가 남아 있기에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다는 위안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