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그을린 사랑>

전쟁은 참혹하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실종된다. 공포와 절규는 분노가 되고, 분노는 또다른 폭력을 낳는다. 휴전이나 종전이 선언되기 전까지 폭력이 폭력을 ‘파생’시킨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2010)은 전쟁이 평범한 한 인간을, 한 가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을린>으로 소개된 이 영화는 당시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잔느(멜리사 디소르미스-폴린 분)와 시몽(맥심 고데테 분)은 쌍둥이 남매다. 어머니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 분)이 수수께끼 같은 유언을 남긴다. 딸 잔느는 아버지를, 아들 시몽은 형을 찾아 편지를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 편지가 전달되는 ‘미션’이 완성되면 자신을 묻고 햇빛 아래 비석을 세워달라고 한다.

잔느가 가진 것은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 한 장. 잔느는 엄마의 고향이라는 중동 어느 곳으로 떠난다. 영화는 엄마의 과거와 잔느·시몽의 현재가 교차된다.

오래 전, 기독교인인 나왈은 무슬림 난민 청년의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맡겨진다. 몇 년 뒤 대학생이 된 나왈은 아이가 있는 고아원이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는 고아원을 찾아가지만 이미 폐허가 된 상태. 이슬람 세력은 아이들을 데리고 데레사 캠프로 떠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녀는 데레사 캠프로 가면서 두 가지 ‘그을린 장면’을 만난다. 하나는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버스에 탄 무슬림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현장이다. 또하나는 잔해만 남아있는 데레사 캠프다.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그녀, 이젠 기독교 민병대를 향해 분노의 총구를 겨눈다. 민병대장을 살해한 그는 크파르리앗 감옥에 갇힌다. 이곳에서 잔혹한 고문 기술자를 만난다. 그녀의 첫째 아들은 어디에 있으며 둘째, 셋째가 되는 쌍둥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어머니 나왈은 ‘약속’이 이뤄질 때 비로소 편히 누울 수 있다고 유언한다. 약속이란 분노에서 분노로 파생되는 고리를 끊는 것이다. 쌍둥이의 아버지와 형을 찾는 순간 비밀이 밝혀지고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는 약속’이 이뤄질 것이라 그녀는 믿는다.

금융에서도 ‘파생상품’이라는 게 있다. 기초상품을 기반으로 나온 금융상품이다. 기초상품은 주식, 부동산, 통화는 물론 원유, 금, 원자재 등 실물자산이다. 파생상품은 원래 실물경제에서 자금을 추가조달하거나 금융상품의 불확실성을 줄여주기 위해 만든 상품이다. 금융공학이라는 수학과 물리학적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르면 상품과 상품을 섞으면 위험도가 떨어진다. 성격이 다른 상품일수록 위험도는 더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주식과 채권, 부동산, 통화상품을 섞으면 최적의 조합이다. 이른바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이론이다. 금융인들은 이 이론을 근거로 파생상품의 파생상품을 끝없이 만들었다.

신나게 다른 상품을 섞다보니 경계가 사라졌다. 분명히 나는 주식상품에 들었는데 알고보니 부동산채권이 포함됐다. 심지어 최초의 파생상품이 돌고돌아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2007년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모기지론이 무너지자 비로소 깨우쳤다. 위험은 나눠져 있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불확실성은 괴물처럼 세계 금융을 집어삼켰다.

영화 속 잔느는 수학 조교다. 강의 중 ‘콜라츠의 추측’이 나온다. 자연수를 하나 골라 짝수면 2로 나누고, 홀수면 3을 곱한 다음 1을 더한다. 이를 계속 반복하면 1이 된다. 세상사 아무리 복잡해도 출발점은 하나다. 단지 파생되면서 갈래를 쳐갈 뿐이다.

가족찾기에 나섰던 시몽은 묻는다. “1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1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이에 대한 잔느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이글은 주간경향 955호에 게재됐습니다.

Posted by 서툰경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