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르 아브르>

프랑스 ‘르 아브르’는 센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노르망디의 작은 항구도시다. 이곳에서 인상주의가 태어났다. 클로드 모네는 르 아브르에서 만난 화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해뜨는 인상’(인상, 해돋이), ‘르 아브르의 박물관’을 그렸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 <르 아브르>(2011)를 본 뒤 느끼는 뒷맛은 ‘따뜻함’이다. ‘해뜨는 인상’을 감상한 뒤 느끼는 감정과 같다고나 할까. 르 아브르에 사는 이웃들은 연민에서 비롯된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아무리 시대가 모질어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이 태어난 핀란드가 그랬다.


시놉시스는 단순하다. 경찰이 쫓는 불법이민자 아이를 밀항시켜주는 거다. 구두닦이 마르셀 마스(앙드레 월름스 분)는 가봉에서 온 불법이민자인 이드리사(브론딘 미구엘 분)를 돕는다. 경감 모네(장 피에르 다루생 분)가 뒤쫓는다.

경찰과 쫓고 쫓기는 스릴이 있는데도 극적이지가 않다. ‘긴장감’이라는 뇌관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얼굴에서도 좀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쫓는 경찰도, 쫓기는 아이도 표정에 드러난 것이 없다.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데도, 화가 났는데도, 슬픈데도, 아픈데도 표정은 밋밋하다. 불치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서야 비로소 옅은 미소를 볼 수 있다.

인상주의를 낳은 도시라지만 영화 속 르 아브르는 메마르고 황량하다. 낡은 문설주와 때묻은 나무탁자. 외벽에는 묵은 검댕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그리고 노인들이 사는 도시다. 이런 풍경은 유럽에서 낯설지 않다. 젊은이가 떠나버려 텅빈 골목, 담배연기로 가득찬 낡은 카페, 을씨년스런 마을의 모습은 유럽의 전형이다.

마을의 주인들은 50대 이상의 노인이다. 구두닦이 마르셀, 그의 아내 알레티, 경감 모네 등은 모두 하얗거나 듬성듬성한 머리를 가졌다. 이드리사의 망명경비를 모으기 위해 열리는 팝공연도 마찬가지. ‘컴백 공연’을 펼치는 리틀 밥은 백발이다. 그는 왕년의 슈퍼스타였다. 그의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왕년의 팬들이다.

고령자가 주도하는 사회는 비단 유럽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가 넘으면 고령화사회로 규정한다. 14%가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2010년 현재 한국의 고령인구 비율은 11%다.

장수는 분명 축복인데 돌아보니 문제가 생겼다. 돈이 더 필요하게 된 것이다. 100세를 산다고 가정하면 50세 은퇴 뒤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일하는 기간은 30대부터 50대까지 고작 20년. 그러니까 20년을 벌어 50년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불가피하게 연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연금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구멍이 나게 생겼다. 개인은 개인대로 쥐꼬리 연금을 받아서는 살 수가 없다. 어디서 생활비를 추가로 벌어야 하나. 아파트 경비원 자리도 귀하다.

고령화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이런 상황을 장수리스크(Longevity Risk)라 부른다. 수명이 사전에 예상치 못한 정도로 증가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다. 국민연금수급 연령과 액수, 국민건강보험, 세금제도 등이 모두 영향을 받는다. 개인은 개인연금상품을 찾는다. 금융기관이나 연기금은 장수채권에 투자한다. 금융시장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영화 속에서 마르셀은 구두를 닦아 용돈벌이를 한다. 빵빵한 연금상품이나 언제든 채용돼 일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은 되레 재앙이 될 수 있다. 은퇴 뒤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기가 갈수록 어려워진 사회로 가고 있다.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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