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줄이겠노라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 오죽했으면 은행들이 ‘대출중단’에 나섰을까. 고객들의 원성이 터져나오면서 한발 물러섰지만 그 의지를 꺾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아프더라도 지금 가계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차후 제2 금융위기 때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이런 판단은 옳다.

문제는 가계대출 억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혼선만 거듭하다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금융당국, 정확히 말하면 ‘김석동’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다른 부처들이 외면하고 있다. 이는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청와대가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출 증가를 막기 위한 가장 시장친화적 방법은 대출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은행에 찾아오는 대출자들의 발걸음을 줄이면 된다.

우선 금리를 보자. 한국은행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기 때문이다. 대출 측면에서 저금리는 ‘악마의 유혹’이다. 적은 이자만 주고 큰돈을 빌릴 수 있다. 주택마련과 같은 실수요 자금은 물론이고 투자용으로도 돈 빌리기가 쉽다는 의미다. 주식투자용 대출 증가가 8월 시중은행 대출 급증 원인 중 하나였던 것은 이 때문이다.

주택 부문도 살펴봐야 한다. 가계대출 총액이 늘어나는 것은 집값 탓이 크다. 수억원을 은행에서 빌리지 않고는 집을 살 수 없다. 높은 집값은 전·월세 자금 대출 수요도 끌어올리고 있다. 점진적으로 집값을 하향 안정시켜야 주택담보대출 총액이 줄어든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대출을 더 해줘서라도 집값을 떠받치고 싶어 한다.

각기 다른 곳을 쳐다보는 부처의 시선을 한데 모으는 역할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몫이다. 금융당국의 주장처럼 가계대출 문제가 위험하다면 정책 우선순위를 가계대출로 잡아야 했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국토해양부 등 관련부처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결과물을 냈어야 한다.

청와대 머릿속은 복잡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을 줄이는 것은 인기가 없는 정책이다. 돈을 빌리지 못한 서민들은 불만을 터트릴 것이고, 돈 회전이 줄어들면 가뜩이나 나쁜 경기가 더 위축될 수 있다. 금융위가 지난 6월 말 내놓은 가계대책도 청와대의 반대로 반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올려줄 대출 희망자를 외면하기 어렵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고객 유치에 나설 것이다. 물리적으로 대출을 금지하면 당장 신용경색을 겪는 시장이 아우성을 칠 것이다. 그러다 행여 김석동호가 좌초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계대책은 사라질 수 있다. 가계대책 진정성을 보이려면 윗선에서 나서야 한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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