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로 접어드는 정권은 복잡한 문제를 다음 정권에 떠넘기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어차피 1년 뒤면 정권이 끝나는데 욕들어 먹어가면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정권 말기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당겨쓰는 것도 있다. 기업의 연말결산을 생각해보면 쉽다.

저축은행 2차 구조조정에 나선 금융당국의 모습이 딱 이렇다. 그동안 누구도 쉽게 열지 못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직접 메스를 대고 수술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웠다. 해결해야 할 근본 문제는 대부분 미뤘다.

기획재정부가 저축은행구조조정특별계정에 1000억원만 지원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 들어 영업정지시킨 16개 저축은행을 처리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필요한 자금은 최대 2조원이다. 원칙적으로라면 이 돈은 정부가 전액 출연해 불을 꺼야 한다. 당초 금융위원회는 5000억원을 요구했다. 이 돈도 부족하지만 재정부는 1000억원으로 ‘싹둑’ 잘랐다. 2013년 균형예산을 만들기 위해서 예산삭감이 필요했다. 금융당국은 당황했다. 부랴부랴 짜낸 묘안이 1000억원을 빌릴 2조원의 이자비용으로 쓰는 방안이었다.

영업정지된 토마토저축은행 예금자들이 안내문을 받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경향신문DB)


2조원을 빌려와 급한 불은 끄게 됐는데 원금 부담이 고스란히 남는다.
원금을 갚지 않는다면 매년 1000억원의 이자를 재정에서 내야 한다. 다음 정권에 2조원의 빚을 고스란히 물려준 것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떠맡긴 7조원의 부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도 다음 정권이 덤터기 쓰게 됐다. PF채권을 처음 매입하도록 한 것이 2008년 12월이다. 당초 이 부실채권은 3년 뒤 정산하기로 했던 만큼 올해 말부터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었다. 채권규모는 올해 말 2500억원, 내년 초는 1조원이 넘는다. 정부는 이 채권의 만기를 2년 연장시켜줬다. 7조원의 부실채권은 차기 정권이 시작되는 2013년부터 끝나는 2018년까지 5년간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폭탄은 또 있다. 영업정지가 유예된 6개 저축은행이다. 이 저축은행들은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과 경영상태가 그리 다르지 않다. 금융당국은 명단공개를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속내는 ‘올 하반기만 넘기자’다. 내년 총선과 대선 바람에 편승해 해를 넘기면 다음 정권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저축은행 문제를 해결할 두 번의 기회를 이미 놓쳤다. 한 번은 2008년이었고 또 한 번은 지난해였다. 올해는 세번째 기회면서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는 제대로 처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차기정권에 부담을 넘겼다가는 역사의 평가를 피할 길이 없다. 적극적인 재정지원과 정보공개가 필요한 이유다.


Posted by 서툰경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