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뛰고 있다. 매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미 온스당 1300달러를 넘어섰고, 연말까지는 1500달러도 무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값은 왜 ‘금값’이 됐을까. 금은 화폐에 밀려 잊혀질만하다가도 대공황, 전쟁 등 세계경제가 위기에 닥치면 화려하게 등장하곤 했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금융위기의 여진이 여전한 상황에서 미국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격폭락이 우려되면서 더 이상은 믿을만한 통화가 없다. 자산가치를 보장할 유일무이한 안전자산인 ‘금’으로 눈이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 등 주요국들이 달러를 팔고 금을 사려는 대열에 동참하면서 ‘금전쟁’의 우려가 나온다.

역사적으로 금은 자체가 통화이면서 통화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금을 보유한 양만큼 화폐를 찍어낼수 있도록 한 금본위제가 폐지된 지 40년도 채 안지났다. 그런만큼 금이 가진 통화의 추억은 여전히 깊고 진하다.
 
각국이 보유 한 금들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다이하드3>가 그 답을 주고 있다.  <다이하드3>에서 테리스트 사이먼이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 곳은 뉴욕, 그중에서도 뉴욕연방준비은행이다.
월스트리트에서 두블럭 떨어진 리버티 스트리트 33번지에는 서 있는 고풍스런 14층짜리 건물 지하를 주시해 보자. 지하 24미터 아래 3중 콘크리트로 만든 벙커 속에는 미국 정부 보유 금과 유럽중앙은행, IMF 등 세계주요기구와 주요 국가들이 맡겨놓은 금이 ‘안전하게’ 보관돼있다.




                                                                <다이하드3-출처: 위키피디아>
 

<다이하드> 시리즈는 브루스 윌리스의 대표작이다. 1편이 LA빌딩에서, 2편이 공항에서 벌어진다면 3편은 뉴욕지하가 배경이다.
테러리스트 사이먼(레미 아이런스)이 세일 중인 백화점을 폭파시킨다. 그는 정직중인 뉴욕 경찰관 맥클레인 경위를 복귀시킬 것을 요구한다. 맥클레인이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자신이 설치한 폭발물을 제거할 수 있다고 협박한다.

사이먼은 1편에서 죽은 피터 그루버의 형이다. 게임은 복수의 다른 형태다. 맥클레인은 할렘가에서 자신을 구해준 흑인 제우스(샤무엘 L. 잭슨)과 함께 사건에 뛰어든다. 사이먼은 월스트리트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폭파시킨다. 이어 뉴욕의 한 학교에 폭발물을 설치해 놓았다고 경고한다.

맥클레인과 경찰이 학교를 찾는 사이 사이먼은 뉴욕연방준비 은행을 턴다. 14대의 트럭에 1400억달러어치의 금괴를 싣고 달아나는 사이먼 일행을 맥클레인이 뒤쫒는다. 하지만 맥클레인이 누군가. 떨어지고 날려가고 두들겨 맞아도 결코 죽거나 부러지는데가 없는 현대판 ‘람보’다. 맥클레인은 캐나다 국경에서 마지막 도주를 하려는 사이먼 일행을 끝내 저지한다.

 
사이먼이 처음부터 원한 것은 금괴다. 학교폭발물 설치는 경찰들의 관심을 돌리기위한 트릭. 뉴욕준비은행의 금괴를 터는 이유는 테러집단인 혁명전사들이 정착할 장소를 매입하기 위해서다.
사이먼이 노리는 대상이 금이라는 것은 영화 초반 복선으로 등장한다. 정직 중인 맥클레인을 복귀시킬 것을 요청하면서 사이먼은 “포트녹스의 금을 모두 준다해도 그와 바꿀 수 없다”라고 말한다. 포트녹스. 켄터키주에 있는 미 재무부의 금고다. 미국 소유의 금은 주로 여기에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배경이다보니 곳곳에 월스트리의 흔적이 담겨있다. 사이먼이 맥클레인에게 30분내 도심을 통과해 전화를 받으라고 지정하는 곳은 월스트리역 공중전화다. 
사이먼은 이 역으로 진입하던 지하철을 의도적으로 폭파시킨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을 털기 위해서다. 지하철 폭파사고의 여파로 음파와 진동으로 작동하는 금보관소 경보는 먹통이 된다. 은행이 경고장치를 끄고 수리에 들어간 사이 사이먼이 지하로 침입, 금괴를 유유히 싣고나간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의 금보관소에는 철문무게만 90톤에 달하는 140개의 보관실이 있다. 각 보관실마다 각국과 주요기구의 금이 보관돼 있다. 사이먼이 중장비로 철조망에 갈고리를 걸어 문을 뜯어낼 때 보관실 명패가 빠르게 지나간다. 눈썰미가 있다면 볼 것이다. 하나는 ‘JAPAN’ 또하나는 ‘Republic of South Afrcia’다.


마침내 금보관소에 진입한 사이먼은 외친다.
“여기가 포트녹스군!”

여기서 포트녹스는 금을 보관하는 장소의 비유적인 의미로 쓰였다.


사이먼이 금괴를 턴 뒤 의기양양하게 부하에게 금괴 하나를 던진다. 금괴를 받는 사나이가 휘청거린다.

도대체 무게가 얼마나 되기에?

금괴는 12.5kg짜리 골드바다. 각국 은행들의 지불예치수단으로 공인된 규격이다. 12.5kg짜리 막대를 받았으니 휘청댈만하다. 이런 금괴가 60만개나 된다고 한다.

 
여기서 영화적 상상력이 동원된다. 영화에서는 금괴를 15톤 트럭 14대로 훔쳐나간다. 60만개 금괴를 모두 털려면 실제로는 500대가 넘는 트럭이 필요하다. 설사 트럭을 구했더라도 문제가 있다. 영화처럼 트럭에 금괴를 뺴곡히 실어서는 트럭이 움직이지 못한다. 타이어가 터져서 내려앉기 십상이다. 계산상으로는 1개 트럭에 1200개를 실으면 ‘만땅’이다.





 
사이먼은 금괴를 보며 “1400억달러어치”라며 “켄터키주 10개도 살수 있다”고 말한다.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보관된 금괴는 모두 7600톤 가량으로 알려져있다. 공식적으로는 680억달러어치(70조원, 달러당 1100원기준)다. 하지만 1995년 영화가 제작된 이후 15년이 지나면서 시세는 달라졌다.  금시세는 10월4일 현재 1g당 4만7000원대다. 7600톤이면 무려 357조원어치가 된다. 영화속 사이먼이 밝힌 1400억달러(154조원)보다도 2.5배가량 많은 액수다.


맥클레인은 몰던 택시가 고장나자 고급 승용차 한대를 반 강탈해 몰고간다. 옆 좌석의 제우스가 “(차량주인이) 열받겠군”이라고 말한다. 맥클레인은 “(남겨둔 택시의) 뒷좌석 보면 마음이 달라질 껄”이라고 답한다. 택시 뒷자석엔 골드바가 있다. 골드바 1개 가격은 요즘시세로 5억8000만원이다.
 
맥클레인은 트럭을 타고 지하터널을 따라 사이먼을 추격한다. 사이먼은 “그 트럭엔 130억달러의 금괴가 있다”며 타협을 제안한다.
한화로 14조원어치다. 요즘 시세로 바꿔보면 30조원은 된다는 말이다. 사이먼은 지하터널의 댐수문을 폭파해 이 트럭을 날려버렸으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물폭탄을 터트린 셈이 됐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세계 각국의 금을 보관하고 있다면 미국의 금 대부분은 켄터키주 미국 재무부금고, 이른바 포트녹스에 보관돼 있다. 금 보관 규모도 포트녹스가 뉴욕연방준비은행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트녹스는 007골드핑거의 무대였다.
 
뉴욕준비은행은 왜 세계 각국의 금을 맡고 있을까.

이야기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 대전 직전만 해도 최대 금보유국은 영국이었다. 기축통화는 파운드화였다.
1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수많은 금이 포화를 피해 미국으로 넘어갔다. 또 유럽은 전비충당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미국에서 차입한다. 1차 대전이 끝나자 세계의 금은 이미 런던을 떠나 뉴욕에 집중됐다.


금본위제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에 따라 화폐를 찍어내는 제도다. 금이 많을 수록 발권력이 강하고, 경제시스템을 지배할 수 있다. 금을 상실한 영국은 금을 다시 모으기로 했다.
하지만 영국은 전쟁으로 약화된 국력을 감안하지 않았다. 전쟁 전 높았던 파운드가치를 고수했던 것이 수출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고, 금을 확보해 대영제국을 부활시키려던 야심도 물거품이 됐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나마 남아있던 금도 유럽을 떠났다. 파운드화는 완전 몰락했고, 달러는 기축통화로 우뚝 섰다. 이를 선언한 것이  브레튼우즈협정이다. 협정을 통해 마련된 브레튼우즈 체제는 당시 가장 금이 많던 미국만이 달러를 금과 바꿀 수 있도록 하고 달러와 금의 교환비율(1온스당 35달러)을 고정시켰다. 나머지 각국의 돈은 달러에 연동시켜 환율을 결정했다. 모든 통화가 달러에 종속되면서 미국은 비로소 세계경제를 지배한다.






  
각국의 금을 보관해주는 중앙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은행, 영국 영란은행, 스위스 중앙은행 등이다. 3개 은행은 2차대전당시 포화를 겪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도 한때 뉴욕연방준비은행에 맡겼지만 지금은 영란은행에 맡기고 있다.
사이먼이 뉴욕연방준비은행을 털었어도 우리나라는 손실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각국의 금을 한곳에 모아놓은 것은 효율적인 측면이 있다. 국가간 금을 교류할 때 국경을 넘거나 바다를 건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쪽방 금을 수레로 빼와 저쪽방으로 넣고 장부에 기록만 하면 끝이다.

금이 다시 금 대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가 보유한 금의 양에 대해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이 보유한 금은 14.4t으로 시가 5억8000만달러(6000억원), 장부가 8000만달러(9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외환보유액 중 금의 비중은 0.2%다. GDP 20위 내 국가들의 평균인 22.6%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그냥 형식적으로만 금을 보유하고 있는 정도다.
중국, 러시아 등이 최근 안전자산을 늘린다며 금매입을 늘리는 상황에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금을 살려면 미국 국채 매입량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국채를 찍어내는 미국이 달가와 할리가 없다는게 문제다. 

국가의 금보유량은 20세기 세계금융시스템을 흔들어 왔다. 브레튼우즈체제로 기축통화를 완성한 미국의 번영은 30년을 가지 못했다. 1950년대 냉전을 거치면서 동맹국에 대규모 원조를 실시하고 1960년대 후반에는 베트남전에 개입하면서 미국이 대규모 재정적자에 빠진 것이다. 
금보유고는 급속히 줄어들었지만 달러는 계속 찍어내야만 했다. 발행한 달러로 금을 다 바꿔 줄 수 없다는 우려가 생겨났다. 1960년후반부터 주요국가들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 줄 것을 요구했다. 기축통화의 믿음은 급속도로 흔들렸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은 달러로 금을 바꾸어주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선언을 했다. 금본위제를 포기한 것이다. 이른바 닉슨쇼크로 불리는 이조치로 금보유량과 관계없이 각국 중앙은행의 재량으로 돈을 찍어내게 됐다. 통화도 자유롭게 교환하도록 해 환율이 계속 바뀔 수 있는 ‘변동환율제’이 기초가 마련됐다.
 
통화교환의 기준으로는 달러를 견줄 화폐가 없었다. 미국은 여전히 정치군사경제적으로 막강한 유일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금이 없어 세계경제주도권을 잃어버리를 듯 했던 미국은 국력을 앞세워 다시 권위를 회복했다. 닉슨쇼크에는 이런 정치경제학적 노림수가 숨어있었다.


Posted by 서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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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8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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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10.11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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